기사입력 2018-03-01
파사드 사진과 함께 떠나는 건축 여행
1,000 Facades: 40개국 60여 도시의 건축을 만나다
건축은 기술과 예술의 합작이다. 구조물을 축조하는 행위가 공학의 영역이라면, 그 형상을 빚어내고 외관을 디자인하는 일은 예술의 영역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파사드’는 건축물의 예술성을 판단하는 가장 크고도 직접적인 기준이 되곤 한다. 건축물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얼굴인 셈이니 가장 중요한 디자인 요소로 여겨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파사드가 단순히 시각적 장치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파사드의 진정한 가치는 소통의 매개체 역할을 한다는 데 있다. 안과 밖을 가르는 경계이자 다시 그 둘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로 작동하기에 건축의 긴 역사 속에서 줄곧 중요한 요소로 여겨져 온 것이다.
우리는 파사드를 통해 건물의 분위기와 주변의 맥락, 나아가 한 시대를 흐르는 정신까지도 짐작해 볼 수 있다. 파사드가 궁전을 비롯한 과거 건축물에서는 권위의 상징이었다면, 근대에 들어 인간 중심의 이성적 세계관이 팽배하면서 장식을 배제하고 기능과 효율을 우선으로 바뀐다. 현대에 와서는 비약적으로 발전한 재료와 기술, 양식 등으로 목적에 따라 건축물의 표정을 자유롭게 구현하기에 이르렀다.
이 책은 파사드 엔지니어 권태웅이 십여 년에 걸쳐 40개국 60여 개 도시에서 촬영한 1,600여 장의 파사드 사진을 엮은 작품집이다.
일견 유명 건축물의 사진들을 모아놓은 책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책을 펼치면 그러한 생각은 금세 사라진다. 파사드 디자인 그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부차적인 설명은 과감히 생략한, 과감한 편집 덕분이다.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운 큼직한 사진들, 혹은 카메라 줌을 당긴 듯 파사드 일부만을 확대한 사진들을 보다 보면 익히 알고 있던 건물에서조차도 낯선 느낌을 받게 된다. 너무 익숙하던 탓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모습들을 알아차리게 되는 것은 이 책이 주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천여 장의 사진과 함께 하는 세계 여행은 친환경 건축의 각축장으로 떠오른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해 유럽 전역을 거쳐 중동 지역으로, 그리고 다시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아시아 국가들을 지나 한국에 도착하면서 그 길었던 여정을 마무리 짓는다.
저자가 포착한 한 장 한 장의 사진 속 파사드에는 그곳에 사는 사람, 그 땅의 모습, 기후, 풍속 등이 쌓여 이뤄낸 문화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역사와 시대 정서, 예술적이고 상징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다양한 재료와 최신 공법에 이르기까지를 모두 담은 각양각색의 파사드를 만나볼 수 있다.
책의 뒤편 부록에는 건물에 숨겨져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앞서 파사드 일부를 확대해 포착한 사진들만을 보여주었다면, 부록에는 도시와 건물의 전경이 담겼다. 도시의 역사, 건물의 재료, 적용된 기술, 건축 용어 등이 마치 사전처럼 간략한 토막글 형식으로 수록되어 있다. 부담 없이 읽어내려가다 보면 어느샌가 건축, 나아가 세계 역사와 문화에 대한 식견이 한층 넓어져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유럽과 아시아, 과거와 현재, 자연과 인공을 아우르는 파사드 사진으로 지역과 시간을 넘나드는 흥미로운 건축 여행을 떠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