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 건축의 거목, 원정수 전 인하대 건축공학과 교수가 지난 10일 향년 87세로 별세했다.
지난달 21일 별세한 한국 최초의 여성 건축가이자 부인인 지순 선생에 이어, 한국 건축계를 밝히던 또 하나의 큰 별이 졌다.
1957년 서울대 건축학과를 졸업한 고인은 공군 시설 장교로 시작해 50여 년간 건축계에 몸담아온 대표적인 원로 건축가로, 1959년 故 지순 씨와 결혼해 부부 건축가로 일하며 반세기 넘게 한국 현대 건축의 최전선을 누벼왔다.
1969년 일양건축사사무소를 설립하여 ‘서울대 학생회관(1972)’, ‘한국은행 강릉지점(1978)’ 등의 대표작을 남겼고, 1983년에는 동료 건축가인 이범재, 김자호, 이광만과 함께 간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를 설립하며 ‘동숭아트센터(1989)’, ‘태평로 삼성빌딩(1997)’ 등의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특히 ‘한국은행 본점(1987)’, ‘포스코 센터(1995)’ 등은 한 시대를 규정할만한 프로젝트들로,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 새로운 시도를 지속하며 한국 건축계의 도약을 이끌고 간삼건축을 한국의 대표적인 대형 설계사무소로 키워냈다.
고인은 이처럼 활발한 실무 활동 가운데서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큰 애정을 쏟았다.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인 1963년부터 1999년까지는 인하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이론과 실제를 넘나드는 교육을 실천했다. 인하대학교를 정년퇴임한 이후에도 6년간 한국건축가학교의 교장으로 활동하는가 하면, 2002년부터는 미국 하와이대학교 건축대학원 실무지도교수를 역임하는 등 최근까지도 교육 현장에서 후학을 양성하는데 힘쓴 것.
간삼건축 대표이사에서 상임고문으로 직을 옮긴 후에는 한층 더 활발해진 저술 활동을 통해 평생 건축계에 몸담으면서 쌓아온 소중한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건축가의 권한과 의무인 설계와 공사 감리를 실제로 진행하면서 얻게 된 경험과 그 가운데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정리한 <원정수의 건축으로 세상보기, 건축세상만사(상상디자인, 2010)>, 건축가로서 50여 년 한 길을 걸어온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부부건축가 건축외길 50년(상상디자인, 2010)>, 50년 건축 여정을 ‘집’의 관점에서 정리한 <집: 한국 주택의 어제와 오늘(간삼건축, 2014)> 등에는, 평생을 오롯이 건축에만 전념한 그의 건축 철학과 삶의 면면들이 그대로 녹아있다.
빈소는 본인이 설계한 은평성모병원에 마련됐고, 발인은 12일 오전 이뤄졌다. 유골은 故 지순 선생이 안장된 절두산 부활의 집에 모셔진다.
한국 건축의 태동으로부터 거장의 시대를 거쳐 파트너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건축의 역사를 이끌어 온 산증인 원정수 영면을 기원한다. 자료제공 / 주.간삼건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