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호가
에디터 전효진 차장 글 황혜정
자료제공 100A 어소시에이츠
땅은 무언의 언어로 아득한 고요에 관해 이야기하는 듯하다. 예기치 않게 심신을 전복할 무언가가 비축되는 정숙과 무인(無因)의 고요함이다. ‘지구상의 무한한 지점 가운데 특정한 장소는 단 한 곳뿐이다. 따라서 장소는 건축을 특수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땅이 내는 그 장면은 어디에선가 읽은 글에 대해 눈 앞에 펼쳐 놓고 설명하는 듯하다. 땅 깊숙이 새겨져 있어서 아무리 깊게 베어 버리고 아무리 씻겨 내도 스멀스멀 다시 올라 오고야 마는 ‘장소의 생기(生氣)’, 그 풍경에 대한 인간의 감응이 공간으로 옮겨져 있다.
산으로 둘러싸인 길을 따라가다 보면 낮은 언덕 위에 앉아 있는 취호가(趣虎家)를 만나게 된다. 병두산과 두타산 그리고 오대산으로 둘러싸인 강원도 평창 호명리 마을이다.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에 호랑이 동상이 자리하는데, 먼 옛날 호랑이가 마을 앞 큰 바위 위에 자주 올라가 울었다고 하여 지어진 마을의 옛 이름인 범우리의 전설을 상징한다. 땅을 감싸고 있는 산세의 주름 사이를 넘나들던 호랑이의 흔적을 눈을 감고 더듬어 보는 듯, 공간들은 나지막히 드리워져 있다. ‘머무르던 것만으로 복원의 에너지를 얻던 호랑이’를 떠올리며, 시간의 경계와 범주를 넘어 변함 없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터 위에 그에 관한 기록을 흩어 놓은 모습이다.
단원 김홍도의 그림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와 죽하맹호도(竹下猛虎圖) 속에 등장하는 송림(松林)과 죽림(竹林)이 그려진다. 그림 속 두 영역은 명상의 장소이자 깨달음을 얻는 장소들이다. 건축은 그 의미를 각각의 공간에 암묵적으로 구축해 놓고 있다. 또한, 그림 속 호랑이는 자아 속으로 성찰에 나서는 존재다. 모든 인위적인 방해물들을 지워내고 몰입하는 행위인 무위(無爲)의 실체가, 현재에서는 공간 그 자체로 표현되고 있다. 공간 및 시간적 경계를 초월하여 영원한 명상의 세계로 이끄는 무한 공간의 의미가 담겨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건축은 공간에 머무르는 이들에게 자정과 회복과 복원의 에너지를 제공하는 무위의 장소가 되리라 기대하게 된다.
어느 면에서 바라보든지 공간은 여백과 졸박미를 추구하고 있다. 자연적인 생기生氣의 순환을 통한 심상의 순환을 이루기 위함이고, 넉넉하고 큰 자연을 주인으로 인정하며 겸손하게 물러서 있는 태도다. 경사진 땅은 수평의 축을 제안하며 장소 너머 산들의 주름과 공간의 경계가 교차하는 장면을 만들어 낸다. 주위의 자연 풍광을 투영시키는 못은 자연과 상호 작용하는 모습으로 경계를 부정하고 있다. 이 수공간의 중앙을 가로질러 건너는 가늘고 기다란 축이 커다란 바위 틈으로 동선을 이끈다. 회색 콘크리트 두 벽체 사이에 나 있는 본체의 진입구다. 앞선 공간인 못이 그러했듯이, 커다란 바위 뒤로 감추어진 무위의 존재 또한 사이 공간을 타고 주변과 상호 관계를 맺으면서 경계를 지우고 있다. 전면이 투명한 벽면을 사이에 두고 건축 공간이기도 주변의 자연이기도 한 내부 공간 역시 마찬가지다. 대지 위에 건축된 모든 공간은 이 장면들의 반복과 교차를 통해 시작하고 끝맺는다.
작품명: 취호가 / 위치: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호명리 180-1번지 / 설계: 100A associates / 시공: 100A associates / 건축면적: 249.06m² (호스트_126.24m²; 게스트_122.82 m²) / 규모: 지상 1층 / 마감: 외벽_노출 콘크리트; 바닥_원목마루, 타일; 벽_타일, 필름, 도장; 천정 – 도장, 필름; 창호_시스템 창호 / 완공: 2021 / 사진: 김재윤 / 영상: 플레이스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