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제연 기자
기사입력 2023-10-10
‘아키라우터’의 세 번째 호 ‘건축의 도시’가 출간됐다. 한양대학교 건축학부에서 2021년부터 연간 출판하고 있는 전문학술도서 ‘아키라우터’는 건축의 근본적 문제의식들을 고민하고, 우리 시대의 현상을 직시하고자 출발했다.
가장 신속하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매체가 전보이던 1960년대, 새롭고 실험적인 건축을 제시한 ‘아키그램Archigram’의 등장을 모두가 기억할 것이다. 2020년대의 ‘아키라우터Archirouter’는 인터넷 검색창 속 정보의 바다를 헤엄치는 현시대를 반영해, 건축(architecture)과 무선공유기(router)의 합성어를 제목으로 삼았다. 현재의 인터넷 창이 그렇듯, 하나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모인 글들을 수평적 위계로 수집하는 구성을 취한다. 이를 통해 우리 시대의 건축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사고와 담론의 촉매가 되고자 한다.
이번 아키라우터 세 번째 볼륨은 ‘건축의 도시(도시도 건축이다)’라는 제목 아래 네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예찬 / 투영>, <비판 / 근대화>, <재고 / 체계화>가 이어지고, <바리아>에는 도시와 관련된 다양한 기고문이 실렸다. 앞선 세 개의 장은 문명의 진행 과정-고전 시대와 계몽주의, 포스트모더니즘으로의 전개-을 그대로 투사한 구성이다.
<예찬 / 투영> 장은 고대 도시들에 대한 예찬과 그 도시의 비전을 투영하는 회화와 건축 등, 전통의 글들을 모았다. 대부분 서구의 것이지만, 아시아의 고대 도시 관련 저술 ‘양도부’(반고)를 가장 먼저 삽입해 균형을 부여한 점이 눈여겨볼 만하다. 이상 도시에 대한 시대적 관심을 역사서술의 시각으로 풀어낸 ‘유토피아의 교훈'(앙투안 피콩)을 끝으로 첫 번째 장은 마무리된다.
<비판 / 근대화>는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전반기까지의 글로 채워졌다. 근대화와 산업화의 시기, 기존 도시 현실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도시에 대한 자각 등 현황 비평과 더불어, 근대화를 시도한 도시 계획안이나 이론들로 실천적 측면까지 다뤘다. 러스킨과 모리스부터 토니 가르니에, 오토 바그너,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르 코르뷔지에에 이르기까지 익히 알려진 근대건축가들의 글이 다수 실렸다.
근대화가 저물던 2차 대전 이후부터 20세기 후반기까지를 다룬 <재고 / 체계화> 장은 새로운 도시 해석과 이를 기반으로 한 건축 제안이 뒤따르는 구성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도래하며 등장한 알도 로시나 레이너 밴험, 타푸리 등이 제시한 도시에 대한 다각화된 시각을 읽을 수 있다.
마지막 <바리아> 섹션은 기고 받은 글들을 모았다. 선행하는 장들처럼 시대적 범주로 구분하지 않고, 시공간을 넘나들며 도시와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건넨다. 파리와 캘리포니아, 서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간을 소개 및 분석하고 도시의 정체성에 대한 담론까지 다뤘다.
도시에 대한 고민은 이론과 실천을 막론하고 건축가들에게 흥미로운 주제다. 도시의 시간이 계속해서 흐르는 동안, 그 세월만큼 쌓여온 담론이 이를 증명한다. 이번 책은 그 퇴적물의 파편이자 표본이라 하겠다.
책에서 소개된 건축가들의 제안과 계획은 그 관심의 구체화이자, 시대마다 새롭게 부여되는 과제에 대한 해답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현시대는 이전의 어떤 때보다 도시에 대한 논의가 다양한 갈래로 뻗어 나가고 있다. 이상도시라는 목표에 도달하는 길에는 항상 방해물이 있어 왔지만, 현대는 자본주의의 양극화와 기후변화 등 그보다 더 복잡한 쟁점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도시의 붕괴와 소멸이 지속적으로 언급되며, 유토피아를 향한 발걸음은 수많은 제약으로 가로막힌다.
그럼에도 인류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어떤 도시에 살아야 하는가? ‘아키라우터 3: 건축의 도시’는 이 물음에 응답하는 대신, 도시에 대해 교차하는 시각들을 풀어놓음으로써 다층적인 사고를 이끌어내는 마중물 역할을 한다. 이 책의 존재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