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가락시장 사거리에는 32m 높이의 깔때기 모양을 한 정수탑이 서 있다. 1986년 가락시장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지하수 저장용 고가수조로 축조된 이 정수탑은, 2004년 물 공급 방식이 바뀌면서 쓰임을 잃고 20여 년째 가동을 멈춘 상태다. 서울에 남은 유일한 급수탑이기에 2009년 한 차례 디자인을 개선한 뒤 지금까지 보존해 왔으며, 지난해 ‘서울은 미술관’ 공공미술 대상지로 선정되면서 국제작품공모를 진행하게 되었다. ‘서울은 미술관’ 사업은 서울 전체가 미술관이 된다는 취지로 2016년부터 운영한 공공미술 프로젝트다. 이번 사업은 송파대로 명품거리 조성 사업과 연계한 것으로, 세계적인 건축가이자 설치미술가 네드 칸Ned Kahn의 참여와 함께 시비 14억 원을 투입, 재탄생을 준비하게 되었다.
작가는 베일Veil 연작, ‘비의 장막Rain Veil‘을 제안했다. 기후 순환에 따라 생성되는 비의 물성을 담아, 바람에 출렁이는 장막을 덧입히는 방식이다. 32m 높이의 정수탑 구조체에 비를 형상화한 장막이 설치될 예정이며, 바라보는 방향과 눈높이에 따라 다채로운 풍경을 담을 것으로 기대된다. 정수탑 일대에는 ‘샘SAM, Seoul Aqua Mounument-932’라는 주제로 공공미술 사업도 추진된다. 사업명은 정수탑이 38년간 딛고 서 온 도로명 지번, 932번지에서 따왔다.
이번 사업은 사라지고 잊히는 장소의 역사와 그에 얽힌 기억을 보존하는 동시에, 일상에서 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재단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제 기능을 잃고 장기간 방치돼 있던 송파구 정수탑은 이제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되어 도시 미관을 살리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완성된 작품은 다가오는 6월 공개된다.
네드 칸은 자연을 주제로 설치 작품을 만드는 환경예술가로서,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샌즈의 대표 조형물로 자리 잡은 ‘레인 오큘러스Rain Oculus’의 작가로 알려져 있다. 마리나 베이 샌즈의 화려한 쇼핑몰 내부에 보트를 타고 다닐 정도의 규모로 커다란 수공간이 마련되어 있는데, 물길을 따라가다 보면 볼록한 볼 형태의 천장에서 폭포가 쏟아져 내린다. 빗물을 모아 1분에 물 22,000L가량을 쏟아내는 이 장치가 친환경 실내 폭포 레인 오큘러스다.
최인규 서울시 디자인정책관은 “가락시장 정수탑 프로젝트는 오랜 도시 유산에 공공미술을 접목해 시민들에게 예술명소로 되돌려 주는 기념비적 사업”이라며, “동남권인 송파구 가락시장 정수탑을 시작으로 서울 시내 5대 권역에 시민이 함께하는 명소를 조성해 도시 곳곳에서 공공예술을 즐길 수 있는 서울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자료제공 / 서울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