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민회관
임태희디자인스튜디오 | LimTaeHee Design Studio
낡고 빛바랜 흰색 페인트 위에 작고 궁색하게 박혀 있는 하늘색 네 글자 ‘시민회관’, 그런 외관을 외면하지 않은 태도가 인상적이다. 그 연륜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의미로 읽혀서다. 시대가 변하고 반짝거리는 수많은 새로운 것들이 넘쳐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기억하겠다는 의지도 함께 느껴진다. 광주시민회관이 건립된 해는 1960년, 완공 이후 광주시민들의 삶의 애환과 함께해 온 장소이자 광주 근대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공간이다. 60여 년이 지난 지금에는 더 이상 당시의 시민회관이 아니다. 그러나 지역의 문화카페이자 지역 청년들의 창업공간으로 변모해 여전히 시민들에게 그 장소를 돌려주고 있다는 점에서 본연의 가치는 동일하게 이어지고 있다.
주차장에서 마주하는 외관은 현대적 감각과 오래된 표정이 엮여 하나의 장면을 만들어낸다. 현대적이고 젊은 감각이 해지고 오래된 백색 콘크리트 왕관을 이고 앉아 있는 형상이랄까! 그 이미지가 자연스레 내부로도 이어져 흐른다. 실내를 마감하고 있던 거의 대부분을 철거한 상태지만 뿌리를 내리고 뼈대가 세워진 초기 모습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다. 벽체와 기둥, 창문과 지붕이 사라진 채 거칠게 남은 골조, 투박하기 짝이 없는 날 것 그대로는 옛 모습의 흔적들이다. 여기에 타일이 새로운 물성으로 더해져 있다. 다채로운 색감과 문양, 매끈한 질감, 반짝이는 물성의 가구들이 기존 골격의 원시적인 느낌을 상쇄하는 것도 같고, 때로는 대비되어 거친 골조의 시크한 감각이 강조되는 것도 같다.
불특정한 여러 청년 창업팀들이 공유하는 공간으로, 하나의 도시 안에 자신들만의 건축 영역을 조성한다는 개념으로 확장시켜 놓고 있다. 도시에 길을 내고 건축물을 조성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공간이 계획되어 있다는 의미다. 1층에 자리하는 공원과 광장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사각형의 가구가 하나의 가게가 되는 셈이다. 가게와 고객의 동선이 분리되지 않도록 고정된 가구와 가구 사이 길을 만들어 동선의 자연스러운 흐름도 같이 계획해 놓고 있다.
시민회관 건너편에는 노인정이 친근한 표정으로 마주하고 있고, 주변으로는 수목들이 터줏대감답게 수려한 풍모를 드러내며 여전히 시민회관을 둘러싸고 있다. 날마다 절기마다 시시각각 바뀌는 주변의 자연 덕분에 개방감을 극대화하고 있는 내외부 공간과 주변 영역들의 표정까지 풍성하고 따뜻하다. 예전부터 봐 온 매우 일상적인 풍경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제는 도심 한복판에서 마주치기 어려운 지극히 비일상적인 풍경이기도 하다.
단순히 물리적인 환경을 구축하는 작업이었던 것 같지는 않다. 호흡이 끝나가는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어 이 시대의 사람들을 다시 주인공으로 모시는 작업, 시대의 필요와 요구에 부응해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창출해 준 작업으로 평가된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의학적으로 치료하고 소생시키는 과정을 담은 의사의 진료 기록부, 카르테가 떠오른다. 적절한 처치로 새로운 모습과 내용을 담아 소생을 시도하고 후대와 상생해 가는 과정을 담은 건축에 관한 기록, 그런 점에서 새로워진 시민회관을 ‘특별한 장소의 카르텔’라는 이름으로 불러볼 수도 있겠다.
프로젝트: 광주시민회관 / 설계: 임태희디자인스튜디오 / 책임 건축가: 임태희 / 위치: 광주 남구 중앙로 107 번길 15 시민회관 1층 구동 21 1 시민회관 / 건축 형태: 리모델링 / 용도: 복합문화시설 / 대지면적: 47,923 ㎡ / 건축면적: 1,452.64 ㎡ / 연면적: 3,033.21㎡ / 규모: 3F / 건폐율: 3.0312 % / 용적률: 5.341 % / 주요 구조: 철근 콘크리트 / 시공: 실내건축젠, 앤하우스 / 내부 마감재: 노출콘크리트, 타일, 도장 / 완공: 2020 / 사진: 최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