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집
마을을 감싸고 도는 산자락을 따라 줄을 긋고 있는 듯 집은 선형으로 앉아 있다. 개구부가 크지 않고 벽처럼 막아 놓은 콘크리트와 목재로 된 굵은 선이다. 미동조차 않을 것 같은 육중한 목재 벽에 손이 닿자 뒤로 스르륵 밀리며 수직으로 열린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경계가 사라지며 안과 밖이 관통하여 흐른다. 기존과는 다른 영역이자 다른 세계로 안내하는 상징적인 관문이다. 그야말로 선을 넘는 순간이다.
경기도 양평에 위치하는 주말주택이다. 160평의 부지는 원래 주말 농장을 목적으로 마련된 땅으로, 한쪽에 컨테이너 상자 하나만 농막으로 자리하던 곳이다. 그 목적대로 주말마다 농사로 땅을 일구던 3년에 걸쳐 재정이 허락될 때마다 단계적으로 건축이 진행된 경우다. 땅의 절반에 농작물이 자리하던 때부터 계획된 선을 따라 농사를 짓고, 그 농장물의 수확 이후에는 형성된 선들을 따라 매스가 놓였다.
2018년 가을에 착공이 이루어지고 2019년 봄에 2단계 공사를 통해 주거 기능이 훨씬 풍족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 이 시기에 수공간이 그리드 라인의 규칙에 맞춰 ㅁ자 모양으로 생성되면서 전체 구성의 핵심 역할을 하고, 수공간 옆에 들어선 2층의 전망대가 대지의 Z축을 형성하며 주변 공간을 분할한다. 가볍게 들어 올려진 정면부의 매스는 수공간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며 경쾌함을 더한다.
농지로 사용되는 구역에 세 번째 매스가 앉혀진 무렵, 정면부의 상승 매스와 대치되는 모양새로 대지를 조금 파고든 선큰이 형성된다. 전체적인 배치에 안정감이 생기고 축의 형태가 견고해진 시기다. 수공간을 대체하며 나타난 네 번째 매스는 ㅁ자 배치를 완성한다. 안과 밖을 구분하는 명확한 공간 구성이 이루어지며 주택으로서의 안정감과 사생활이 보호되는 형태로 마무리된 것이다. 각기 다른 시기에 들어선 공간들은 개별적인 기능을 갖는 동시에 서로 연결된 하나의 형상으로 자유로운 동선을 만들어내고 있다.
선형으로 이어진 공간은 안팎을 선명하게 나누지만 가변적이다. 집 곳곳에 설치된 움직이는 벽이 열릴 경우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안팎의 구분이 모호해진다. 열린 벽 사이로 마을 풍경과 산 능선이 안마당과 침실로 흘러 들어오기도 하고, 후정으로 바로 연결되기도 한다.
선형의 집은 긴 동선을 유도하기도 한다. 몇 걸음만으로도 집 전체를 섭렵하는 아파트와 달리 공간에서 공간으로의 이동이 꽤 길어 계속해서 움직이게 만든다. 농사 짓는 집답다. 집을 중심으로 비어 있는 대지 역시 크고 작게 나누어져 일조량과 빛의 방향에 맞추어 각기 다른 농작물들이 심어져 있다. 덕분에 세 방향으로 열리는 공간에서 쉽게 밭으로 접근 가능하고, 저녁에는 닫아 온전한 쉼터로 조성할 수 있다. 농사를 노동의 개념이 아니라 건축 공간과 자연스레 어우러지는 문화생활이자 여가활동으로 일상화시켜 주는 집이다.
작품명: 선집 / 위치: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용천리 / 설계: 오르트건축 / 건축가: 김호중 / 디자인팀: ABIM Architects / 시공: NNM건축 / 구조설계: BASE / 전기, 기계설계: 정연엔지니어링 / 건축주: 마종인 / 용도: 단독주택 / 대지면적: 896m²/ 건축면적: 139.56m² / 연면적: 139.56m² / 건폐율: 15.56% / 용적률: 15.56% / 규모: 지상 1층 / 높이: 4.61m /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 완공: 2020년 9월 / 사진: 진효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