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23-02-18
“공부하면서 얻게 되는 앎이 있다면 기꺼이 나눌 것을 약속하는 것만이 그에 대한 나름의 보답이라 여긴다. …
누군가에게 세계의 모두였거나 지금도 여전히 그런 곳일 수밖에 없는 보통의 집을 꽤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살필 수 있어서 행복했다.” -한국주택 유전자 중-
평생에 걸쳐 앎을 기꺼이 나눠온 학자, 박철수 서울시립대학교 교수가 지난 14일 별세했다. 향년 64세.
고인은 1982년 서울시립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에는 LH의 전신인 대한주택공사에 재직하며 연구를 이어갔고, 2002년부터는 모교인 서울시립대학교의 건축학부 교수로 자리를 옮겨 학생들을 가르쳤고, 50여 권의 저서를 통해 그 결과물들을 꾸준히 외부와 공유하며 한국 근현대 주택사 정립의 기틀을 마련해 왔다.
건축계에서는 누구나 그 성취를 인정하는 ‘근현대 주택사 전문가’인 그는, ‘아파트 전문가’라는 별칭을 얻었을 만큼 여느 전문가들과는 달리 대중에게도 친근한 연구자였다.
한국인의 보편적 집에 대해 관심으로, 단순한 건축물로서의 집을 넘어 ‘주거건축과 문화’, ‘도시공간과 사회 환경’ 등 집을 통해 문화와 시대를 살피는 작업에 특히 공을 들였기 때문이다. 대한주택공사 연구원 시절에는 <한국공동주택계획의 역사(공저, 세진사, 1999)>, <21세기의 환경과 도시(공저, 민음사, 2000)> 등 주로 일반론적인 시각에서 공동주택의 역사와 개념을 정리해왔다면, 교수직을 맡아 본격적인 연구 활동을 펼치면서부터는 그 시각을 더욱 거시적으로 확장한 것.
2006년에는 <아파트의 문화사(살림)>를 통해 소비와 욕망의 시공간인 아파트의 역사를 다양한 관점으로 소개했고, 2011년에는 친구인 박인석 명지대학교 교수와 함께 ‘보통 수준의 공사비로 건축가와 함께 도전한 실용적이고 품격 갖춘 집짓기’ 과정을 기록한 <아파트와 바꾼 집(공저, 동녘)>을 출간해 큰 화제를 모았다. 이후에도 꾸준히 <아파트: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 사회(마티, 2013)> 등을 집필하며 아파트에 대한 왜곡된 주택 관을 바꾸고자 하는 시도를 이어왔다.
2010년대 후반부에 들어서는 한국 근현대 주택사의 교과서로 불릴만한 명서들도 다수 출간됐다.
한국 주거 유형의 변천사부터 법령과 제도에 의해 형성된 거주문화까지 오랜 시간 관심을 가져온 연구자가 아니라면 다루기 힘든 주제들을 망라한 <박철수의 거주 박물지(도서출판 집, 2017)>를 비롯하여, <경성의 아빠트(도서출판 집, 2021)>에서는 아파트의 뿌리를 찾아 1930년대까지 거슬러 가기도 한다.
특히 지난 2021년 출간된 <한국주택 유전자 I, II(도서출판 마티)>’는 그야말로 한국 주택사의 백과사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 관사에서부터 지금 한국의 모든 것이 얽혀 있는 대단지 아파트에 이르기까지, 한국에 지어졌던 거의 모든 주택의 이야기를 2권, 약 1,300쪽의 방대한 분량에 걸쳐 샅샅이 살핀 책으로, 지난해 한국건축문화대상 국무총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도 ‘경성 상류사회’, ‘경성 전화번호부 해제’, ‘소설로 읽는 한국주거사’, ‘박철수의 거주박물지 II’ 등을 집필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옛 마포주공아파트를 다룬 고인의 마지막 저서는 다음 달 출간될 예정이다.
고인의 발인은 17일 오전 분당 서울대병원 장례식에서 엄수됐다.
한국 건축사 연구의 기틀을 마련해 온 학자, 삶의 여정을 마치고 영면에 든 고인의 명복을 빈다. 사진제공 / 서울시립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