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프리츠커상의 수상자가 발표됐다. 영예의 주인공은 RCR 아르끼떽또스의 공동대표 3인, 라파엘 아란다Rafael Aranda, 까르메 피젬Carme Pigem, 라몬 비랄타Ramon Vilalta. 스페인 출신의 건축가로는 1996년 수상한 라파엘 모네오 이후 두 번째다.
스페인 소도시의 건축가들
“지방 소도시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우리가 외부로부터 닫혀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스스로를 지역주의 혹은 풍토주의자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언제나 보편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시작점이 이곳일 뿐이다.”『RCR 작가집, C3, 2007』
RCR은 R.아란다, C.피젬, R.비랄타가 1988년 그들의 고향인 스페인 올롯에 설립한 건축 사무소다. 지난 30여 년 간의 활동을 통해 이제는 전세계로 그 무대를 넓혀가고 있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올롯이라는 작은 도시에 견고히 뿌리내리고 있다. RCR은 역대 프리츠커 수상자들과는 다른 행보를 보인다는 평을 듣는다. 대도시를 기반으로 하지 않기에 주류에서는 다소 벗어나 있지만, 지역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며 자신들의 건축 세계를 펼쳐가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RCR의 건축에는 장소를 대하는 태도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건축가에게는 장소에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할 책무가 있다. 모든 작업은 주변 환경을 파악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넓게는 지역의 역사, 지형, 전통, 문화, 가깝게는 주어진 장소를 비추는 빛과 그 장소에 드리워진 그늘, 계절마다 달라지는 주변 풍경까지, 관계된 모든 요소를 면밀하게 살핀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의 결론은 하나로 수렴된다. 바로 ‘자연’이다. 특유의 건축 언어로 자연을 끌어들임으로써 장소와 하나 된 건축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RCR은 이를 장소와의 진정한 ‘관계 맺기’라고 표현하며, 이러한 관계를 통해 건물은 장소에 힘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말한다. 실로 그들의 건축은 평범하게 지나쳤던 장소가 건물에 의해 잠재력을 일깨울 수 있음을 증명한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균형의 건축
“건축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모더니즘이나 미니멀리즘 같은 특정 사조가 아니며, 첨단 기술로 무장하는 것이나 지금 이 순간의 트랜드를 따라가는 것도 아니다. 답은 시공간을 뛰어넘는 균형이다. 이것이 바로 균형의 건축이다.”『RCR 작가집, C3, 2007』
RCR의 건축은 지역을 기반으로 하지만,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통용되는 보편성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여기에는 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철과 유리, 플라스틱 등의 현대적인 재료도 한 몫을 한다. 다만 RCR은 재료 자체의 물성만큼이나, ‘단일성’이 발하는 힘에 주목한다. 재료 사용을 단순화 함으로써, 건물 안의 사람들이 다른 요소에 관심을 뺏기지 않고 온전히 공간을 느끼며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시간의 측면에서도 이들의 건축은 보편적이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RCR의 사무실이기도 한 ‘바르베리 실험실Barberi Laboratory’이 그 대표적인 예다. 오래된 공장을 리모델링한 이 건물에는 과거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겨져 있으며, 유리와 강판 등 현대적인 재료로 이루어진 새로운 요소는 꼭 필요한 부분에만 더해졌다. 지난 시간에 존경을 표하는 동시에,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혁신의 끈도 놓치지 않으려는 그들의 신념이 이 건물 하나에도 오롯이 담겨있는 것이다.
심사진 역시 “RCR은 과거를 존중하면서도 현재와 미래를 명료하게 더해 넣음으로써 시간을 뛰어넘는 시적인 건축을 완성해냈다.”고 평하기도 했다.
적절한 재료와 건축 기법을 도구 삼아, 주어진 시간과 장소에 충실한 건축을 만들어 내는 RCR. 이들의 작품에서 지역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들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