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전효진 차장
기사입력 2023-05-25
어퍼하우스-오리엔티드Upperhouse-Oriented
2021년 기준 대한민국의 전체 주택 중 공동주택이 차지하는 비율은 78.3%, 전체 일반 가구 중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가구는 63.3%를 차지한다. 주택법상에서는 하나의 건축물 안에서 각각 독립된 주거 생활이 가능한 구조의 주택을 공동주택으로 정의하고 있는데, 아파트, 연립주택, 기숙사 등, 단독주택을 제외한 사실상 대부분의 주택이 이에 속한다. 이러한 공동주택을 얘기할 때 으레 따라 나오는 단어가 있다. ‘유닛’이다. 여러 가구가 집단으로 거주하는 공동주택에서 개별 가구를 지칭하는 ‘유닛’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유닛’이 공동주택의 가장 큰 맹점을 만들게 됐다.
현대사회에서는 지극히 주관적인 개인 삶의 만족도를 종종 누군가와 비교 가능한 객관적 지표로 대변하곤 하는데, 그 대표적 지표가 바로 ‘집’이다. 이러한 이유로 개인에게 소유된 단위 세대는 끊임없이 더 나은 공간으로 진화하게 됐고, 그 결과 누구나 인정하는 고효율의 유닛들이 모범 답안처럼 제시되기에 이르렀지만, ‘유닛’만을 생각하는 사고방식에서 여러 문제가 비롯됐기 때문이다. 함께 사는 생활문화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상황도, 아파트 내부에서의 생활만이 강요되는 상황도, 인간을 자연과 단절시킨 것도, 나의 ‘유닛’만을 생각하는 사고방식에서 기인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공동주택이 직면한 이처럼 다양한 문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건축가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할까?
이러한 문제의식을 지닌 디자이너가 견인한 공동주택을 면밀히 살펴보는 책 ‘어퍼하우스-오리엔티드’가 출간됐다. ‘어퍼하우스’는 공간 디자이너 그룹 STRX가 2012년 시작한 자체 진행 프로젝트이자, 기획부터 시공까지 모든 과정을 디자이너가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공동주택 연작이다. 각 입주자의 필요와 요구에 맞는 집을 디자인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작업을 하기에, 여느 공동주택들과는 달리 단위 ‘유닛’의 모양과 구성은 대부분 다르다. 책에서는 이들의 디자인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 과정과 결과의 이면을 세심하게 뜯어서 살펴본다. 그러나 보통의 작품집들처럼 만든 사람의 입장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고 기록하지 않으며, 지어진 결과물을 외부자의 시선으로 분해하고 독해한다. 디자인이 끝나서 이미 누군가 살고 있는 공간들을 모아서 다시 살펴보는 것이다.
책은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집에서 일어나는 ‘행위’, 그것을 둘러싸는 ‘공간’, 그것이 모여 만들어지는 ‘집’이다.
첫 장에서는 ‘행위’가 만들어 내는 집 속의 유형학을 다룬다. 집은 다양한 행위가 일어나는 곳으로, 거주자의 요구 사항과 행위 패턴에 대한 고려가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이 장은 집 안에 있는 여러 영역에서 특정 행위가 어떠한 유형으로 이어졌는지, 각각은 어떻게 다르고 왜 달라졌는지를 상세하게 추적-열거한다. 욕실을 예로 들자면, 집집마다 욕실에 대해 어떤 요구를 했는지, 디자이너는 그것을 어떻게 풀어냈는지, 나아가 욕조의 종류에 따라 욕실의 구성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세면대의 종류에 따라 유형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심지어 집집마다 욕실에 달린 샤워기가 어떻게 다른지까지도 한눈에 비교할 수 있다.
두 번째 장은 ‘둘러싸는 공간’, ‘형성되는 내부’, ‘이어지는 공간’, ‘쌓여가는 객체’, 네 개의 세부 챕터로 나누어, ‘공간’이라는 대상의 실제에 관해 얘기한다. 앞 장에서 살펴본 각각의 영역이 공간이 되어 집을 이루고, 다시 건물을 이루기까지의 과정을 다각도로 살펴보는 것. 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공간이라는 대상이 자율적으로 갖는 다양한 건축적 가능성에도 주목한다. 주요 건축적 개념들, 이를테면 공간의 지각, 형식과 형태, 실제성, 내부성, 부분과 전체, 텍토닉 등은 각 공간을 읽기 위한 장치로 작용하는 셈이다.
마지막 장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상호작용하며 만들어 내는 결과물 ‘집’을 보여준다. 어떠한 건축적 깊이에 의해 어떠한 멋진 디자인 의도로 지어지든, 어퍼하우스는 결국 평범한 일상의 공간으로 남는다. 이 장에서는 어려웠던 디자인 이야기를 떠나 사소한 일상이 펼쳐지는 삶의 배경을 사진으로 담아내며, 이것이 어퍼하우스 디자인의 결말임을 전한다.
더 나은 건축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해 ‘어퍼하우스-오리엔티드’는 공간에 담긴 디자인적 고민의 내용과 의미를 어떻게 흥미롭게 전달할 수 있느냐가 앞으로 건축 창작의 관건이 될 것이라 말한다. 즉, 건축적 고민의 깊이가 곧 공간의 가치라는 것. 이 책에 담긴 다양한 영감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엮어나가는 과정을 통해, 그곳에 살아갈 사람들이 공간을 더 풍요롭게 누릴 수 있게 해줄 멋진 아이디어들을 얻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