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제공 CIID
벽이,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주변의 풍경을 다르게 편집하여 보여준다. 일조의 시간대에 따라서도 다채로운 그림자를 연출하며 생경한 풍경을 선사하기도 한다. 시선을 가리는 ‘지루한’ 벽이 아니다. 커피를 마시러 나갈 때나 기지개 펴려고 고개를 들 때면 시선을 맞추고 ‘감상하는’ 벽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그저 벽이 아니라 인접 건축물의 마당과 벽과 창의 위치가 철저히 계산되어 개폐 비례가 결정된, 말하자면 ‘조망 미학 장치’다. 기와의 오목한 곡선 느낌이 차용되었으며, 질감이 강조되어 형태에 따른 이질감이 줄어들어 있다. 기와의 이미지를 갖고 주거지 안에 자연스레 스며들고자 의도한 파사드는 완전한 가림막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틈 사이로 일상을 주고받으며 주변과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전면도로의 고저차가 3미터로, 입구의 반이 지면에 묻혀 있어서 로비를 비롯한 2개 층의 주요 시설이 지하에 위치할 수밖에 없다. 업무 특성상 필요한 높은 천장고의 촬영 스튜디오가 지하 2층에 배치된 이유다. 이외에도 기피 대상인 지하 공간에 과감하게 3개의 선큰이 마주보도록 계획되어 자연광과 자연 환기에 효율적인 환경을 꾀하고 있다. 깊이가 각기 다른 이들 공간은 사람의 시각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사옥을 하늘에서 내려다볼 때 비로소 숨겨진 3개의 보이드가 눈에 들어온다. 깊이가 다른 만큼 각각의 선큰에서 이루어지는 빛의 중첩들이 각기 다른 시나리오를 읊조리듯 새로운 장면들을 연출한다. 반대로, 선큰에서 하늘을 올려다볼 때도 경계가 되는 벽과 계단과 열린 하늘이 물리적으로 엮이며 다양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계단을 야외로 만들어 산책로처럼 계획한 활용성도 돋보인다. 산책로가 된 계단은 도로에 면하며 건축물의 진입로와 겸하고 있는데, 계단 양 옆이 투명하게 열려 있어 마치 공중을 걸어 오르내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 계단 끝에는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와 넓은 데크가 구성되어 있어서 탁 트인 하늘과 도심으로의 전망을 누릴 수 있다. 각 층으로의 물리적인 이동 통로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계단은 시각적으로나 자연적으로 환기가 가능하도록 안과 밖을 잇는 매개 공간이 되고 있다. 덕분에 장시간 근거리의 화면을 바라보며 일할 수밖에 없는 크리에이터들에게 잠시나마 시원한 시야를 선사한다.
유튜브 콘텐츠를 기획하고 생산하는 크리에이터들이 모여 일하는 곳이다. 콘텐츠 제작의 특성상 낮밤 구분 없이 긴 시간을 사옥 안에서 보내게 마련이다. 조이트로프Zoetrope라는 개념으로 접근한 것을 보면, 밤낮 쉴 새 없이 공간을 사용하게 되는 그 자체를 건축 공간의 중요한 프로그램으로 이해하고 있다. 조이트로프는 여러 장의 그림을 빠르게 회전시켜 움직이는 듯한 환영을 보게 만드는 애니메이션 초창기의 기구다. 정지된 겉모습과 달리 속을 들여다보면 연속해서 바뀌는 여러 장의 그림들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장면을 만들어 낸다. 주거지 깊숙한 곳에 자리한 이 건축물 역시 겉으로 보았을 때는 그저 단단한 콘크리트 벽일 뿐이다. 하지만, 건축물 내외부로 중첩된 공간들 곳곳을 시간에 구애받지 않으며 부지런히 탐험하고 경험하면서 각 크리에이터들 고유의 유연한 움직임과 장면들이 끊임없이 생산될 것이다. 나날이 쌓여 갈 경험들과 장면들이 갈수록 상상의 지도를 확장시키며 그려 나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실에 실재하는 거대한 조이트로프, 크리에이터들의 즐거운 놀이터가 되리라 기대하게 된다.
작품명: 조이트로프 / 위치: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 설계: CIID_주익현 / 설계팀: 유재준 / 지역지구: 제1종 전용주거지역 / 용도: 근린생활시설 / 대지면적: 423.10m² / 건축면적: 210.91m² / 연면적: 867.56m² / 건폐율: 49.84% / 용적률: 98.94% / 규모: 지하 2층, 지상 2층 / 높이: 10.6m / 주차: 6대 / 구조: 철골철근콘크리트구조, 일반철골조 / 외부마감: 럭스틸, 박판세라믹, 흑벽돌 / 완공: 2021 / 사진: 송유섭, 건축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