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전효진 차장, 김소원 기자
기사입력 2023-05-23
2023년 베니스비엔날레 제18회 국제건축전 한국관 전시가 5월 18일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개막했다. 한국관 전시는 커미셔너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선정한 정소익도시매개프로젝트 대표과 박경미국 샌디에고대학교 교수이 총괄 예술감독을 맡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이번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를 준비하기 위해 2022년 4, 5월 두 달 간 한국관 예술감독을 공개모집했다. 총 6건의 신청서 가운데 서류 심의 및 전시계획안 PT와 인터뷰 심의를 거쳐 정소익과 박경 팀을 선정함으로써 1995년 한국관 건립 이래 첫 공동 예술감독 체제가 결정되었다.
이번 한국관 전시의 주제 ‘2086: 우리는 어떻게?’는 고도화한 기술 발전으로 편리하고 풍요로운 시대에 살게 된 현대사회에서 느끼는 불안과 위기, 결핍에 집중한다. 이에 전 세계 인구가 최고점에 이르는 2086년을, 인류 문명이 새로운 변곡점을 마주하는 시기로 가정하고, 그간 손수 이뤄놓은 문명화와 도시화 속 생존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베니스 현지시간으로 5월 18일, 오후 4시 15분에 열린 한국관 개막식에는 주이탈리아 한국대사관 이성호 대사, 주밀라노 대한민국총영사관 강형식 영사, 김태우 부영사 등 정부 관계자 외에 2014년 한국관 커미셔너 조민석 매스스터디스 대표, 조병수 2023년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총감독, 천의영 한국건축가협회 회장, 박양우 광주비엔날레 대표 등 국내 건축가 및 예술계 관계자들과 세바스티아노 코스탈롱가Sebastiano Costalonga 베니스시 부시장 등 국내외 주요 인사 약 200여명이 참석했다.
전시는 관람객 참여형 ‘Together How 게임’을 중심으로, 건축가와 지역사회 활동가들이 협업하여 진행한 ‘장소특정적 프로젝트 – 네 개의 미래 공동체’를 통해 이들 지역의 미래 가능성을 탐구한다.
먼저 사례 연구의 성격을 띠는 ‘장소특정적 프로젝트’는 세 개의 도시 건축적 미래 시나리오와 한 개의 영상 작업으로 구성된다. 지역 전문가와 건축가가 각각 한 팀을 이루어, 인구 300만 명의 글로벌 거대도시인 인천, 26만 명의 중규모 도시인 군산, 1,360만 명의 경기도 안에 점점이 위치한 저밀도 마을 등 서로 다른 규모와 맥락을 가진 세 지역을 대상으로, 이들의 도시화, 현대화, 서구화 과정과, 그 과정 중에 나타난 갈등과 모순 등을 조사했다. 그리고 인류의 생태문화적 진화의 결정적 요인이라고 보이는 변증법적 과정에 비추어 이들 도시의 2086년 모습을 그려본다.
민운기스페이스 빔와 건축가 서예례Urban Terrains Lab가 함께 작업한 ‘미래로서의 폐허, 폐허로서의 미래’는 동인천 배다리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재개발의 압력을 시각 및 음항 자료로 표현한 작품이다. 우당탕탕윤주선, 채아람과 건축가 강예린서울대학교, SoA이치훈는 군산 현장 연구와 활동의 결과물을 기록한 ‘파괴적 창조’를 선보인다. 김월식과 건축가 N H D M황나현, 데이빋 유진 문은 ‘이주하는 미래’ 프로젝트를 통해, 안산과 경기 지역 마을을 이동과 이주라는 주제로 묶어 다양한 공동체의 공존을 화두로 제시한다.
그런가 하면 정재경의 비디오 작품 ‘어느 미래’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위기와 희망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2086년의 어느 도시 상황을 그려낸다. 장소특정적 프로젝트의 대상지인 인천, 군산, 경기도 일대 마을의 역사와 현실을 2086년 미래 도시의 무대로 치환하고, 허구적 이야기 형식을 통해 ‘2086: 우리는 어떻게?’가 탐색하는 미래 공동체의 모습에 관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장소특정적 프로젝트’가 방문자의 관람을 목적으로 하는 사례 연구성 전시라면, ‘Together How 게임’은 방문자의 적극적 개입을 목적으로 하는 참여형 전시다.
전시는 TV 퀴즈쇼의 형식을 표방하고 있다. 정해진 자리에 앉은 네 명의 참여자가 11분간 멀티비전 영상 속 진행자가 던지는 질문에 답하는 식인데, 총 14개의 질문을 통해 경제, 사회, 자원과 국토에 관한 이슈를 다루면서 참여자가 자신의 태도와 입장을 선택하도록 요구한다. 각각의 질문들은 한국관 전체 주제인 환경 위기나 인류 멸종 시나리오와 맞닿아 있지만, 이러한 문제 상황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는다. 플라스틱을 사용할 것인지, 육식과 아보카도를 탐닉할 것인지를 묻는 대신, 우리의 욕망의 실체가 무엇인지, 얼마나 관심을 두고 주변을 바라보는지, 행동할 것인지 방관할 것인지를 묻는다.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 상황들은 과거의 우리가 순간순간 내렸던 사회 경제적, 정치적 선택의 종합적 결과이므로, 그만큼 일상 속의 선택 하나하나가 중요함을 인지케 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참여자들의 선택의 결과는 전광판과 에코그램Ecogram 칠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전광판의 조명은 참여자들의 매 선택에 반응하여 켜지면서 참여자들이 실시간으로 게임 결과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동시에 전광판에 적힌 문구들을 통해 <2086: 우리는 어떻게?>가 던지는 의심의 지점들을 순차적으로 강조하여 드러내며, 개인의 선택을 시대의 문제의식과 연결시킨다. 한편, 전광판이 개인의 선택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면, 에코그램 칠판 위에 적히는 지표들은 개인의 선택이 모인 공동 선택의 결과를 보여준다. 하루 동안 누적된 게임 결과를 기온, 해수면 높이, 지니계수, 난민 수, 탄소 배출량 등 여러 가지 사회생태적 수치들로 변환하여 게시하는 것.
즉, 방문객은 ‘Together How 게임’에 참여하고 그 결과를 관찰함으로써, 개인의 선택과 공동의 선택, 사회생태적 문제의 연결 구조를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환경 위기와 인류 멸종 시나리오의 근원은 사실 개개인의 몸과 정신 안에서 비롯되었음을 인지하고, 그간 산업화, 도시화, 현대화, 식민지화, 세계화를 통해서 무한한 물질적 쾌락을 좇는 파우스트 적 이데올로기에 편승해 왔음이 이 모든 문제들의 핵심임을 깨닫기에 이른다. 이렇듯 전시는 인류의 미래를 결정지을 최후의 순간 혹은 최선의 선택, 그 해답을 과거로부터 찾아 나가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이 필요함을 알린다.
제18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은 가나계 스코틀랜드 건축가인 레슬리 로코Lesley Lokko가 총감독을 맡아 ‘미래의 실험실The laboratiry of the future‘을 주제로 55개 팀(건축가)이 참여하는 본전시를 선보인다. 총 30개 팀이 참여하는 큐레이터 스페셜 프로젝트에는 작년 세계적 권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세계예술상Leonardo da Vinci World Award of Arts’을 수상한 한국계 건축가이자 코넬대학교 건축 및 예술설계대 122년 역사상 여성으로는 최초로 학장으로 임명된 윤미진 건축가가 <Mnemonic> 테마 세션에 참가했다.
지난 5월 20일에는 공식 개막과 더불어 이번 전시에 대한 시상식이 진행됐는데, 최고의 국가관 전시에 수여되는 국가관 황금사자상은 ‘Terra[Earth]’를 주제로 한 브라질관에, 본전시 참가 작가에게 수여되는 작가 황금사자상은 스톡홀름과 베들레헴을 기반으로 건축 및 교육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는 DAAR(알레산드로 페티Alessandro Petti + 샌디 힐랄Sandi Hilal)에게 돌아갔다. 역량있는 신진 작가에게 수여하는 은사자상은 뉴욕 브루클린에 기반을 둔 나이지리아 태생의 예술가 올라레칸 제이포스Olalekan Jeyifous가, 평생 공로상은 나이지리아 출신의 예술가이자 디자이너, 건축가인 데마스 은오코Demas Nwoko가 받았다.
5월 20일부터 일반인 관람을 시작한 국제건축전은 이탈리아 베니스시 자르디니 및 아르세날레 일대에서 11월 26일까지 6개월간 열린다. 자료제공 / 한국문화예술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