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방면
에디터 전효진 차장 글 황혜정 편집 김예진
자료제공 원애프터건축사무소
쇠락해 가는 마을을 따라 공간들 역시 노화되어 부서지고 사라지는 중이었다. 오래도록 방치되어 손상되면서 지붕은 하늘로 열리고 바닥은 땅으로 되돌아갔다. 인간의 발길이 부재한 틈을 타고 숨어들어 온 식물들이 땅과 공간의 곳곳을 차지하며 안식처로 삼고 있던 땅이었다. 건축 공간이 소멸해 가는 을씨년스럽고 초췌한 이 과정이 오히려 공간 디자인의 동기부여가 되어 준 모양이다. 죽어가는 공간의 맥락이 그대로 옮겨지되,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소생된 풍경으로 재건된 모습은 이를 찬찬히 설명하고 있다.
전라북도 전주시 팔복동에 새로 문을 연 카페다. 한때 공장 노동자들의 기숙사가 자리하던 곳으로, 주변 공장들이 폐쇄되면서 같이 버려져 있었다. 부지에는 세 개의 건물이 위치해 있다. 북쪽에 위치한 두꺼운 건물은 기숙사를 관리하는 가족의 주거지였고, 가운데 3개의 방으로 구성된 건물과 남쪽에 4개의 방이 있는 가느다란 건물들은 공장 근로자와 그 가족들을 위한 숙소로 사용되었다.
작은 실들의 크기가 세 평 반 정도에 불과했고 각 건물 간의 이격 거리 또한 1.2미터로 좁아서 현대적인 프로그램을 수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벽과 지붕의 일부가 체계적으로 철거되고 새로운 기둥과 지붕 구조물이 설치된 이유다. 이 과정을 통해 환기와 채광이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는 쾌적하고 밝은 환경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한층 여유로워진 공간들 사이로 사람들이 자유롭게 거니는 동시에 나무와 화초들 역시 함께 어우러지고 있다. 죽어가던 공간의 빈틈에 애처롭게 숨어든 풍경이 아니라, 사람도 자연도 싱그럽게 숨쉬는 온기 있는 공간으로 살아난 모습이다.
카페의 카운터가 위치한 북쪽 건물은 단열 및 온도 조절이 가능한 유일한 실내 공간이다. 중간에 위치한 건물에서는 양 옆면을 제외한 모든 벽이 철거되어 있다. 대신 기존 벽이 있던 위치에 메탈 격자 벽이 설치되어 빛이 투과되는 환한 공간이 자리한다. 바닥에서는 더 큰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땅을 파내고 들어선 선큰 가든과 그 위를 브리지처럼 거닐 수 있는 통로가 이색적인 정원 풍경을 선사한다.
남쪽 건물에서는 기존의 내부 벽은 보존되고 있지만, 공원을 마주하던 외벽은 허물어져 있다. 대신 대청마루와 같이 탁 트인 공간이 구성되어 이웃하고 있는 경관을 친밀하게 누릴 수 있다. 동쪽에는 기존의 세 건물을 연결하는 하나의 통로가 조성되어 있어서, 재건되어 새롭게 살아난 각 공간들을 가까이에서 경험하며 이동할 수 있다.
다방茶房면의 차茶와 음료를 나누며 사람들이 담소와 쉼이 이루어지는 공간이고, 다방多房면의 활동을 수용하는 많은 방들이 있는 공간이며, 친구와 나무와 이웃과 하늘과 다방多方면으로 소통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작품명: 다방면 / 위치: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팔복동 303-22 / 설계: 원애프터건축사무소 (안미륵, 마준혁) / 설계팀: 이윤하, 손보미 / 용도: 상업시설 (약과 카페) / 대지면적: 331m² / 건축면적: 141.32m² / 연면적: 141.32m² / 건폐율: 42.69% / 용적률: 42.69% / 규모: 지상 1층 / 구조: 조적조, 철골조 / 완공: 2023 / 사진: 장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