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여승윤 기자
기사입력 2023-11-14
“파리는 마천루의 도시입니다.” 책의 첫 장을 펼치자마자 나타나는 문장에 문득 의구심이 든다. 세월의 흔적에 흠뻑 젖은 나지막한 건물들이 모여있는 것이 파리의 매력인데, 마천루의 도시라니 말이다.
독자들의 그런 의아함을 짐작했던 걸까. 저자는 바로 다음 문단에서 자신이 파리를 마천루의 도시라고 생각한 이유를 풀어 놓는다. 로마시대 이전부터 켜켜이 쌓여 있는 파리의 역사를 수직으로 쌓아 올리면 하늘을 찌를 듯 높게 솟은 마천루를 연상케 한다며, 파리는 자신만의 마천루를 숨기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기원전부터 15세기까지의 파리 도시 건축에 대해 이야기한다. 유학 시절, 파리라는 도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무수히 그림을 그리고 모형을 만들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그 과정에서 스스로 찾아낸 자신만의 파리의 역사를 소개한다.
책은 총 13개의 챕터로 구성되는데, 파리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며 아직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주요 공간들을, 특유의 경쾌한 문장과 그림으로 설명하는 구조다.
파리라는 이름의 기원, 고대 로마의 도시 계획과 도시 체계, 당시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의 건설, 활용, 사라진 이유 등을 저자만의 방식으로 설명해 나간다. 원형경기장은 어떻게 만들고 사용했는지, 로마시대에 있던 공중목욕탕은 어떻게 구성되었고 왜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었는지, 로마시대의 도로는 어떻게 만들었기에 지금도 사용할 수 있는지, 저 높은 산에서 멀리 떨어진 광장이나 집까지 어떻게 물을 끌어와 풍족하게 물을 사용할 수 있었는지와 같은, 사소한 듯하면서도 건축과 도시의 역사를 관통하는 질문들의 답을, 마치 탐정 놀이를 하듯 찾아간다.
이 외에도 성당을 부르는 명칭인 카테드랄, 에글리제, 샤펠, 바실리카의 차이, 성당에 붙어 있는 기괴한 형상의 가고일을 둔 이유,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를 설치하는 이유와 설치 방법 등, 파리는 물론 유럽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도 빼놓지 않고 이야기한다.
파리의 역사를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유쾌한 수다로 풀어내는 이 책과 함께, 혹은 저자와 함께, 잠시라도 파리지앵이 되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