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지
에디터 전효진 차장 글 황혜정 편집 한정민
자료제공 에이오에이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사진 진효숙
땅은 도로보다 낮고 완만하게 가라앉아 있다. 1천여 평이나 되는 대지로 주변 풍경들이 아늑하게 모여든다. 한적한 들판이 하늘을 따라 평행하게 펼쳐지고, 마을 너머로 산등선이 나지막하게 이어져 흐른다. 해 질 녘이면 옆집 굴뚝에서 뽀얗게 연기가 피어올라 시골의 평온하고 정감 어린 정취가 더욱 짙어진다. 대단한 풍광이 없다 보니 긴장할 일도 없다. 주어진 환경에 색도 없이 그저 무심하게 툭툭 흩어져 앉은 것은 그 덕분인가 보다. 집과 집 사이의 여유만큼 정겨운 정취와 풍경도 유유자적하게 흐르고 있다.
큼직한 무채색의 오브제처럼 보이는 다섯 동의 집들은 들판 위에 띄엄띄엄 앉아 있다. 이웃집들처럼 단층의 독채로 떨어져 자리한 스테이 하우스다. 이웃하는 풍경에 어색하지 않게 어우러지게끔 주변 집들보다 크지도 않으며 세련되지도 않다. 창고, 비닐하우스, 원두막같이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브제 마냥 자립되어 존재하는 공간들을 닮고자 의도한 것 같다. 그렇다고 그대로 재현된 형태는 결코 아니다. 그들과는 분명 거리를 둔 모습이지만, 정서적으로 친숙함과 정겨움이 묻어나 시골 여느 공간들을 떠올리게 된다.
콘크리트 외관을 가진 집들은 마치 땅 위에 부유하는 듯 살며시 떠 있다. 숙박동 세 동과 커뮤니티 창고, 주인집으로 구성된 집들은 서로 떨어진 동시에 지름 30m의 원형 보행로를 중간에 두고 서로 이어져 있기도 하다. 비가 많이 내려서 여기저기 물웅덩이가 생기는 대로, 볕이 좋아서 풀이 허리춤까지 자라 올라오는 대로, 손타지 않은 자연 그대로를 두고 떠 있는 길. 하루가 달리 바뀌는 땅을 내려보며 그 작은 풍경으로 순시에 집중하게 만든다.
집 생김새를 따라 팔각형 모양으로 중정이 난 ‘팔각집’은 가족이 머물기에 가장 적당하다. 중정과 연결된 유리문으로 햇살이 따뜻하고 풍요로이 들어오고, 동틀 녘 침대에서 눈을 뜨면 머리 높이 난 작은 창으로 가파른 천장을 훑는 빛줄기를 마주한다. ‘긴집’에서는 기다랗게 나 있는 천창이 집 전체를 끊기지 않고 가로지른다. 천창 전체가 지붕 보다 2m가량 돌출되어 있어 빛이 은은하게 퍼진다. 밤이면 밝은 내부가 반사되어 비치기도 하고, 불을 끄면 펼쳐지는 밤하늘 속 별을 볼 수 있다. ‘둥근집’에서는 천장에서부터 매달린 거대한 오브제가 인상적이다. 벽난로처럼 생긴 주방용 후드가 그것으로, 천창의 빛을 반사해 집안으로 산란할 때 오히려 제 몫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른 아침 독채에서 나와 커뮤니티 공간으로 건너가면, 긴 건물만큼 긴 책상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처마 밑 흔들리는 초목들을 따라 이런 저런 생각에 빠진다.
높은 천장 아래 볕으로 가득 찬 집은 풍요로운 풍경으로 이끈다. 한가히 개 짖는 소리를 들으며 집안 구석구석 너울대는 빛 그림자를 눈으로 좇다가 졸기도 하겠고, 음악을 들으며 창밖의 파밭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하겠다. 모두 ‘호지’만이 선사할 수 있는 따뜻함이고 느슨함이다.
작품명: 호지 (HOJI) / 위치: 강릉시 연곡면 신왕리 250외 1필지 / 설계: 주식회사 에이오에이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대표 서재원) / 조경: 안마당 더랩 / 가구: 씨오엠 / 용도: 단독주택, 숙박시설 / 대지면적: 3,361m² / 건축면적: 436.86m² / 연면적: 399.71m² / 건폐율: 12.99% / 용적률: 11.89% / 규모: 지상 1층 / 구조: 철근 콘크리트 / 완공: 2022 / 사진: 진효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