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한나 기자
한국건축역사학회 월례학술대회
건축사 연구의 새 지평
한국건축역사학회의 월례학술대회가 ‘건축사 연구의 새 지평’이라는 주제로 지난 3월 16일 동국대학교에서 열렸다. 장용순홍익대학교 교수의 사회하에 3인의 발표와 전체토론의 순으로 진행된 이날 발표회는 오늘날 건축에 맞닿아있는 몇 가지 쟁점들을 살펴보고 이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나눈 자리였다. 특히 발표자로 나선 이들이 모두 신진 학자였던 만큼, 건축 이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공유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김정인숭실대학교 교수은 “비평성 비판: 건축의 지역성 논의를 바라보며”라는 발표를 통해 케네스 프램프톤의 비평적 지역주의Critical Regionalism가 불러온 지역주의 담론을 새로운 각도에서 해석했다.
그는 오늘날의 세계화를 이끄는 원동력으로 자본주의에 기반한 근대성을 꼽았다. 그리고 이러한 근대성의 원류는 지난 두 세기를 휩쓸었던 국가주의 사상에서 찾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서구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국가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국가와 지역 간의 차이를 무색하게 하고 전 지구를 세계화라는 일률적인 흐름 속에 빠뜨렸다는 것이다.
때문에 케네스 프램프톤이 제시한 비평적 지역주의는 세계화에서 한발 물러서 다시 ‘지역’으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여전히 중요하게 다뤄진다. 여기서 김 교수는 비평적 지역주의를 통해 되찾은 ‘지역성’이 과연 진짜 지역적인가에 의문을 제기한다.
실제로 지역성은 대개 국가의 정체성이나 전통 안에서 얘기돼왔다. 그러나 경계해야 할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국가라는 범위 안에서 지역성을 논하다 보면, 자칫 보편적인 생각이나 문화마저도 각국의 상황에 따라 임의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국가주의가 과거와는 또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음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지역성이란, 초국가적인 문화를 누가 먼저 자국의 국경선 내에서 재포장하고 재생산해내는지와 다름없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진정한 국가성을 자각하지 못한 채 얘기되는 지역성은 국가 간의 또 다른 문화전쟁일 뿐이며, 오히려 비평적 지역주의에 담겨 있는 ‘저항’의 의미마저도 무색하게 한다고 지적한다. 이는 한편으로 서구 국가가 비서구 국가 강연에 드러내는 오리엔탈리즘의 연장선으로도 볼수 있다.
그동안 비평적 지역주의에 관한 대부분의 연구가 물리적 ‘지역’에만 주목한 데 반해, 지역성과 보편성의 경계를 되짚으며 비판을 제기한 신선한 접근이었다.
윤지희라홍익대학교 교수는 “글로벌화: 서울의 변신, 글로벌 존 안의 건축으로 본 한국의 세계화”라는 주제로, 오늘날의 한국에서 문화도시 담론의 전개 양상을 살펴봤다.
서울시는 지난 2008년, 서울을 세계 10위권의 글로벌 도시로 만들겠다는 목표하에, 외국 기업의 경제활동을 유도하기 위한 글로벌 비지니스 존(4곳), 외국인 밀집 거주지인 글로벌 빌리지(6곳), 외국인 관광객이 집중되는 글로벌 문화교류존(5곳), 총 15곳의 글로벌 존을 조성한 바 있다. 발표는 문화교류존에 속하는 북촌과 인사동, 이태원과 동대문을 각각 비교·분석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전통문화공간의 특징이 비교적 잘 드러난다고 꼽은 북촌과 인사동에서는 이 둘의 상반적 평가에 주목했다. 흔히들 북촌은 한국적 맥락 속에서 전통을 재발견한 모범적인 사례로 평한다.
그에 반해 인사동은 넘쳐나는 국적불명의 상품과 그 상업적 특성 때문에 한국성을 잃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여기서 윤교수는 오히려 북촌 한옥마을이야말로 관광사업을 육성하려는 정부의 야망으로 본질이 변해가고 있다며, 상업성에 치중한 국가주도사업의 맹점을 꼬집었다. 또한, 변화를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편협한 시각은 전통 해석의 폭을 스스로 한정하는 것이며, 이는 결국 잠재적인 발전가능성까지 가로막을 것이라는 따끔한 지적도 서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