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하예 나니아
제주의 푸른 하늘을 캔버스 삼아 각기 다른 질감과 물성과 색감이 입체적으로 어우러진 모습이다. 회색 노출콘크리트와 자색의 럭스틸, 제주석과 청고벽돌, 투명한 유리창과 비어 있는 여백까지, 음양의 각을 만들어내는 한 편의 건축적 추상화로 세워진 듯 느껴진다. 같은 공간, 같은 장면을 경험한다고 하더라도 개개인의 무의식적 인지방식에 따라 다른 해석과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추상화의 힘과 매력일 것이다. 그런 의미로 비추어 보자면, 공간을 경험하는 이들마다 고유의 서사적 풍경과 기억과 해석을 담아가도록 의도 되고 의미 부여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건축적 추상’을 꾀한다는 해석을 해보게 된다.
16세기 유럽에서 유래된 수집을 위한 공간 ‘쿤스트캄머(Kunstkammer)’가 떠올려지기도 한다. 유럽인들이 신대륙으로부터 수집한 희귀한 물건들을 전시하고 진열하는 공간을 지칭한다. 당시 유행한 수집품을 위한 이 공간은 수집자의 취향에 따라 저마다 성격이 다른 공간으로 무수한 재생 및 변화가 이루어졌다. 수많은 시간과 과정을 거치며 재생된 쿤스트캄머의 질서는 결과적으로 점차 자신만의 시선을 담아가는 내밀한 소우주를 구축해온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추상적 공간과 더불어 쿤스트캄머에 담긴 의미처럼, 많은 이들이 함께 사용하게 될 공용의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각기 다른 경험과 이야기를 품어가는 공간이고자 한 것에 하예 나니아의 디자인 의도가 응축되어 있다. 위치한 장소가 제주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제주는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을 원하는 이들이 가장 접근하기 쉬운 여행지다. 단순히 자연 풍광을 바라보는 것을 위해서가 아닌 각자 품어갈 기억을 위해 찾아간다. 여행자들 개개인의 쿤스트캄머가 되는 장소, 그것이 하예 나니아의 바람이다.
각 실들을 전체 속에서 나누어진 조각들로 해석해서는 안 될 것 같다. 각자만의 풍경을 담는 이벤트 상자들이 적층되고 얽힌 채 하나의 장소, 또는 하나로 무리 지어지는 풍광을 만들어내고 있다. 각각의 프로그램 상자가 자아내는 서사적 공간들이 주변의 실재적 풍광들과 마주하며 파노라마적 서사성은 더욱 극적으로 연출된다. 눈앞에 펼쳐져 있는 나지막한 제주의 땅과 정겨운 촌락 그리고 하늘과 바다가 자신만의 기억과 이야기로 흡입되어 들어올 것이다.
프로젝트: 제주 하예 나니아 / 위치: 제주도 서귀포시 하예동 1884-6 외 1필지 / 설계: 김동진(홍익대학교), ㈜ 로디자인 / 설계담당: 주익현, 윤지혜, 권정열, 이지홍 / 시공: 대한종합건설 / 용도: 레스토랑, 스파 / 대지면적: 768.00 m² / 건축면적: 151.78 m² / 연면적: 860.24 m² / 규모: 지하1층, 지상3층 / 구조: 철근콘크리트 / 외부 마감: 럭스틸, 노출콘크리트, 청고벽돌, 제주석 / 설계기간: 2015.5~12 / 시공기간: 2016.3~12 / 사진: 신경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