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회 한국건축가협회상 결과가 발표됐다. 올해의 수상작은 ‘공간태리’, ‘바하리야’, ‘보리’, ‘신길중학교’, ‘청라 하나금융 공동직장 어린이집’, ‘체인지업 그라운드 포항’, ‘해방촌 신흥시장 환경개선 사업’이다.
한국건축가협회상은 건축가와 관련 전문가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 문화 발전에 공헌하자는 취지로 1979년 제정된 상으로, 당해 가장 우수하고 뛰어난 건축적 성취가 있는 작품에 수여해 그 노력과 공로를 치하해왔다. 올해도 2019년부터 2022년 7월 사이에 준공된 건축물을 대상으로 7월 29일까지 참가 신청을 받고, 이후 5인의 심사진(이한호심사위원장, 에이유종합건축사사무소 정수진SIE 건축, 정영한정영한아키텍츠, 조성익홍익대학교, 남정민고려대학교)은 석 달에 걸친 3단계의 심사를 진행하여, 총 61개의 출품작 중 7 작품을 최종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나은중네임리스건축사사무소, 민우식주.민워크샵 건축사사무소, 강우현주.아키후드 건축사사무소, 이현우주.이집건축사사무소, 손진주.이손건축건축사사무소, 장윤규운생동건축사사무소, 위진복유아이에이건축사사무소.주건축가가 올해의 영예를 안았다.
올해의 수상 결과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카페나 휴양 숙박시설 등 대중이 쉽게 경험할 수 있는 건축물들이 다수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11개의 현장 심사 대상 중 무려 6 작품이 이 분야에 속했는데, 이러한 현상에 대해 심사진은 “이 분야의 건축물들은 형태, 공간, 구법에서 건축가의 적극적인 실험이 특히 돋보였다. … 카페와 여행에 대한 대중의 관심, 독특한 공간을 만들고 싶어하는 건축주의 투자 그리고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하는 건축가의 모험이 더해진 결과라 추측했다.”며 향후에도 더 새로운 건축과 공간이 등장할 수 있는 분야라는 평을 전했다.
‘공간태리’는 대전 유성의 계룡산 자락 아래 위치한 카페로, 계룡산 수통골이라는 계곡의 형상을 모티프로 삼은 작품이다. 크기와 높이가 다른 두 개의 볼륨은 길을 사이에 두고 배치되어, 손에 닿을 듯한 물리적 거리감을 형성하며 오래전 동네 골목길의 익숙함을 환기한다. 동시에 흘러내리는 듯한 곡선의 벽curved wall은 땅과 건축의 경계를 흐리며, 평범했던 길을 지나가는 이들이 기대어 쉬어갈 수 있는 여린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 상업적 기능을 우선 할 수밖에 없는 카페 건축의 한계를 넘어, 공공성의 가능성을 열어줬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경기도 여주에 자리한 ‘바하리야’ 역시 카페 건물이다. 부지 옆으로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삼각형 부지에, 땅의 형상을 그대로 닮은 삼각형 매스를 배치하여, 마치 사막에 자리 잡은 유목민의 거처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특히 1층에는 필로티 구조를 적용해 건물을 땅으로부터 들어 올리고, 그 위층 또한 세장한 비율로 제작된 T 멀리언을 사용함으로써, 투명성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구조의 경계를 소거시켜 내부 공간의 자율성을 획득하고 있다. 삭막한 사막과도 같은 장소에서 빠른 속도감에 대응하는 시간의 풍경과 하얀 모래 정원과 반사못 위로 떨어지는 빛의 풍경이 공존하게 만든 ‘은유의 건축’으로 완성도가 높다는 평을 들었다.
‘보리’는 전남 영광 해안도로 변에 자리 잡고 있는 카페로, 장소가 품고 있는 선천적인 요소인 경관과 지형을 원형 그대로 유지하기 위한 건축가의 전략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수평적 경관의 고유성을 지속하기 위해 지형과 건축의 경계를 흐려 마치 지형의 일부가 되어가게 한다던가, 장소의 원시성을 회복하기 위해 부지 주변을 청보리밭으로 되돌려 놓는 방식 등인데, 이를 구현하기 위한 정교한 디테일 또한 주목할 만하다. 과한 조형감을 지닌 최근 상업건축의 트렌드에서 벗어나, 최대한 작고 낮게 그리고 뒤로 물러서, 장소에 누가 되지 않는 겸허의 건축을 보여주어 심사진의 호평을 받았다.
지역과 주민들에게 기여하는 건축은 언제나 환영받는다. 대학 캠퍼스의 라운지 역할을 하는 ‘체인지업 그라운드 포항’, 지역 어린이들을 위해 지어진 ‘청라 하나금융 공동직장어린이집’, 오래된 시장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해준 ‘해방촌 신흥시장 환경개선 사업’이 그 사례들이다.
‘체인지업 그라운드 포항’은 벤처기업 육성을 위한 스타트업 공간이다. R&D센터나 창업지원센터 등은 그에 따른 최적화된 기능이 강조되어, 사무실은 연속적으로 배치되고 공공공간은 사무실과 분리되어 별개로 존재하는 게 일반적이다. 반면 이 건물은 이러한 두 가지 공간적 특성을 현명하게 재해석·재조합한 프로젝트다. 복도와 홀은 그 본연의 기능을 넘어 사무실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공용공간으로 작동하고, 사무영역들 사이에 자리한 빈 공간들은 그 애매함으로 인해 사용자들의 접근을 용이하게 유도하여 오히려 빈 공간의 자율성과 독창성을 사용자에게 맡긴다. 개별성과 익명성에서 벗어나 시너지를 강조하는 협동체적 공간이 구현된 점이나, 색다른 분위기로 짧은 시간 내에 인근 주민들에게도 잘 알린 공간이 되었다는 점에서, 건축물이 가진 기능 이상을 구현하고자 한 건축가의 노력과 사회적 역할에 충실한 장소를 만들고자 한 발주처의 의지가 하나로 빛을 발한 프로젝트라는 평이다.
인천 청라지구에 완공된 ‘청라 하나금융 공동직장어린이집’은 오늘날의 아이들이 잃어버린 ‘동네’라는 소우주를 되찾아주려 한 작품이다. 길처럼 이어지는 복도와 계단, 길 따라 있는 집처럼 접해있는 보육실의 구성을 통해, 어린이를 위한 작은 도시가 형성된 것. 뿐만 아니라 건축적으로는 평면에서 보이는 간결한 구성이 입체적으로 변하는 단면과 만나며 풍부한 공간을 연출해 눈길을 사로잡는다. 다만 녹화지붕이 외부 보행자의 눈높이에서는 살짝만 보여 다소 아쉽지만, 내부에서는 외부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풍부한 교감을 제공하고 있는, 다양함과 균형이 함께하는 훌륭한 사례라는 의견이었다.
위진복의 ‘해방촌 신흥시장 환경개선 사업’은 기존 건축물이 가진 한계와 복잡한 지형, 상인들의 요구 사항, 기상 조건 등 실질적인 어려움을 구조적 접근을 통해 해결한 프로젝트다. 기존의 구조물에 손을 대지 않으면서, 구조 부재의 치수를 줄이고, 마치 학이 발끝으로 서듯 여러 개의 발가락 끝으로 서 있는 듯한 구조적 접근은, 현실적인 제약과 난관 속에 제안된 탁월한 해법으로 눈길을 끌었다. 결과적으로 옛 건물 위에 구름처럼 놓인 초극박막 불소수지 필름은, 비를 막고, 기존 구조물을 유지하는 기능적인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신흥시장의 옛 풍경을 살리며 공존하는 새로운 재료로, 신흥시장의 미래를 보여줬다고 평가받았다.
당연하게 반복되는 건축의 정형성을 의심하고 재구성하는 것 또한 건축가의 책무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신길중학교’는 종일 책상에 앉아 있어야 하는 학생들에게 닭장 같은 교실 대신, 테라스와 넓은 복도를 학생들에게 선사한다. 복도의 폭을 넓혀 라운지처럼 사용하게 하고, 교실 사이 곳곳에는 테라스를 두어 휴식 용도로 사용하는 식이다. 질서정연한 학교의 모습을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다소 위험한 제안일 수도 있겠지만, 이처럼 수십 년 간 반복되어온 학교의 기본 형태를 벗어나려는 노력, 즉 새로운 건축적 시도를 위해서는 건축가뿐 아니라 관련된 모든 사람이 변화와 모험을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함을 일깨워 주어 더욱 의미가 깊다.
협회상과 더불어 특별상인 무애25년건축상, 김정철건축문화상, 한국건축가협회 골드메달의 수상자도 선정했다.
매 해당 연도 기준으로 준공된 지 25년 이상 경과한 국내 건축물 중 현대까지 건축적·공공적 가치를 인정받는 작품에 수여하는 ‘무애25년 건축상’은 김중업김중업합동건축연구소의 ‘육군박물관’이 수상했다.
건축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서 건축문화 발전에 공로가 인정되는 자에게 수여하는 ‘김정철건축문화상’은 월간 <SPACE> 역대 편집부가 선정되었으며, 건축가의 삶 동안 건축 작품의 현저한 업적을 이룩하여 대중과 동료 및 후배 건축가들에게 존경받는 건축가에게 수여하는, 한국건축가협회 골드메달은 강석원그룹가건축도시연구소 건축가가 수상자로 추대되었다.
제45회 한국건축가협회상의 시상식 및 전시회는 오는 11월 ‘대한민국건축문화제’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자료제공 / 한국건축가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