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모스한국위원회 + 서울학연구소
한양도성의 보존·관리 및 활용방안 토론회
지난 5월 4일, 잡음도 논란도 많았던 인고의 시간 끝에 숭례문이 우리의 품으로 되돌아왔다. 이를 계기로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도 전례 없이 높아진 요즘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한양도성이 있다. 서울의 도심부를 둘러싼 한양도성은 그간 경제적 논리에 밀려 그 가치가 거의 함몰되다시피 했지만, 지난해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면서 다시금 전 국민의 소중한 자산으로 여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 보존 실태를 들여다보면 열악하기 그지없다. 세계유산 등재를 논하는 한편에서는 여전히 오래된 돌담, 축대, 심지어 재떨이 취급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제2, 제3의 숭례문이 될지 모른다는 걱정이 과한 우려만은 아닌 현실이다. 성숙한 문화의식만큼이나 이를 뒷받침해줄 제도적 여건의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이에 서울시는 지난해 8월부터 이코모스 한국위원회와 함께 ‘서울 한양도성 보존·관리·활용 마스터플랜’을 수립 중에 있다. 그리고 지난 5월 15일 서울시청에서는 마스터플랜 수립 과정의 일환으로, 이코모스 한국위원회와 서울학연구소의 공동 주관 하에, 세계문화유산에 걸맞은 한양도성의 지속적 보존, 관리 체계를 만들어가기 위한 토론회가 개최됐다. 전문가 11인이 참여해 한양도성의 분야별 연구과제를 살펴봄으로써, 앞으로의 계획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구체적으로 모색한 의미 있는 자리였다.
제1부_한양도성의 가치와 보존철학
1부에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정의를 통해, 한양도성은 어떤 가치에 초점을 맞추어 세계유산 등재를 준비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은 어떠한 원칙 하에 이뤄져야 하는지를 짚어봤다.
첫 번째 주제발표는 1차 국제학술회의에도 참여한 바 있는 이상해 교수성균관대학교, 전 이코모스한국위원회 위원장가 맡아, 세계유산제도에서 바라본 한양도성의 가치와 보존철학을 제시했다. 유네스코는 ‘유산’이라는 용어를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것을, 현재 우리가 공유하고, 미래 세대에게 전승해주는 것’으로 정의한다. 그러나 이러한 유산들이 다음 세대로 전승되는 데는 현실적으로 많은 난관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시간이다. 어떤 유산도 시간에 의한 노후화를 피할 수 없는 까닭이다. 물론 근래에 들어서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사회·경제적인 상황도 이에 못지않은 위협 요소가 되고 있다. 이러한 위기의식은 1960년 나일 강 상류에 댐을 건설하면서 고대 유적들이 수몰되는 사건을 계기로 본격 대두된다. 이후, 베니스헌장(1964)의 발표와 유네스코의 세계유산협약 채택(1972)의 과정을 거쳐, 1978년부터는 ‘주권과 소유권, 세대를 초월하여 인류가 공동으로 보호하고 관리해야 할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세계유산을 전 인류의 자산으로 여기고 함께 지켜가기 위한 세계유산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이러한 세계문화유산은 기념물monuments과 건조물군groups of buildings, 유적지sites, 즉, 물리적인 실체로 그 등재대상이 한정된다. 또한, 세계유산 운영지침에서 규정한 6가지 등재 기준 중 하나 이상을 만족해야 하며, 진정성과 완전성도 중요한 평가 요소다. 이를 보호하기 위한 계획의 수립도 필수다. 여기서 이 교수는 다소 애매할 수 있는 진정성과 완전성 항목은 해당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입증’하기 위한 요소로, 보호 및 관리 계획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요소로 해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유네스코에서 수립한 세계유산의 보호 전략 ‘5C(신뢰, 보존, 역량 구축, 소통, 지역사회)’를 소개하며, 한양도성의 등재신청서 작성 시에도 이를 토대로 한 계획이 수립해야 할 것임을 강조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듯이 우리가 등재시키고자 하는 제도를 이해하는 것은 올바른 방향 설정을 위한 첫걸음이다. 특히 한양도성은 앞서 언급한 6가지 등재 기준 중 무려 4가지에 부합하는 만큼, 이중 어떤 가치를 중점적으로 다룰지도 앞으로 고민해야 할 모두의 과제일 것이다.
다음으로는 이상구 교수경기대학교가 한양도성 일대의 원지형과 경관을 주제로 발표를 이어갔다. 그는 현재 5곳(혜화문-경신고, 흥인지문-광희문, 남소문지, 숭례문-돈의문지, 창의문)에서 진행 중인 원지형 추론 작업을 소개하며, 이러한 연구가 복원의 밑그림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또한, 원지형을 토대로 한 경관의 회복은 서울다움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빠르고도 바른 대안이라며, 경관의 중요성도 거듭해서 강조했다. 지형과 일체화된 성곽이 도시의 배경으로 중첩되면서, 서울은 자연과 삶이 어우러진 독특한 경관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지금은 도심지 도처에서 경관회복사업이 이뤄지고 있다. 성공적인 사례도 있지만, 사직단과 경희궁처럼 좋은 경관을 보여줄 수 있는 장소임에도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없다는 점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한양도성의 가치가 관계 속에서 형성됐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도시 주요 조망점들과의 관계 회복까지도 함께 고민하는 넓은 시각을 갖춰야 할 때다.
1부의 마지막 발표는 송인호 교수서울시립대학교, 이코모스한국위원회 사무총장가 맡아, 한양도성 보존· 관리 및 활용의 방향과 원칙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살펴봤다. 한양도성의 특성과 가치는 크게 네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도심을 둘러싸고 있는 도시적 규모의 유산. 둘째, 600년의 세월이 축적된 역사적 층위의 유산. 셋째, 땅과 한 몸으로 구축된 유산. 넷째, 집단 장인 기술로 구축된 유산이다. 이처럼 한양도성은 일반적인 단일 문화유산과는 그 속성 자체가 다르기에, 보존관리의 정책 기조도 달라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가 말한 핵심은 바로 ‘시민’이다. 18.6km라는 광범위한 접촉점을 가진 만큼 시민의 협력 없는 보존이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도심으로 들어오면 도성은 시민의 삶과 더욱 많은 부분에서 밀접하게 맞닿아있다. 여느 도시계획과는 달리 관리계획의 수립과정에서 주민 참여가 이토록 강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덧붙여 성곽의 관리가 더욱 통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도 재차 주장했다. 현재 한양도성은 원형이 남아있는 구역, 복원된 구역, 멸실된 구역으로 그 현황 자체도 다양할뿐더러, 그 안에는 각종 국보와 사적이 포함돼있고, 공유지와 사유지가 공존하는 등, 하나로 일반화시킬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다양한 유형과 소유체계를 고려한 통합적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면, 도시재생이나 마을만들기 등, 현재 추진 중인 도시계획 사업과 성곽의 통합적 관리도 기대해 볼 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