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터처블 하트, 공백
에디터 현유미 부장 글 황혜정 편집 한정민
자료제공 건축사사무소 에스에프 랩
제주석이 낮고 짙게 깔려 있는 해안가다. 드문드문 이끼처럼 검은 돌을 덮고 있는 해초 너머로 더 낮고 더 잠잠하게 제주의 바다가 누워 있다. 인적이 드문 날 것 그대로의 낮고 평온한 수평선의 풍경이 지면을 따라 똑같이 낮고 평온하게 걸어 올라온다. 무심하게 자리하는, 역시나 인적인 드물어 날 것 그대로처럼 보이는 두 동의 건물 안으로 거부감 없이 들어온다. 바다의 자연과 육지의 인공 구조물이라는 전혀 다른 피조물이지만, 오랜 세월 서로를 응시하며 닮아보기로 작정한 것처럼 전해오는 정서가 많이 비슷하다.
건물은 제주 북동쪽 해안가 마을의 끝자락에 위치한다. 거친 해풍에 나무와 들풀이 육지를 향해 누운 채 자라는 언덕에 두 동의 창고가 무심히 앉아 있다. 1982년에 냉동창고로 지어진 건물들이다. 오랜 시간 방치된 폐허 특유의 적막함과 거친 무질서의 감각이 분명하게 살아있다. 재생된 공간은 그런 감정의 선을 잘라내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보존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공간에 담긴 서사적 태도가 명확하다. 폐허로 방치되어 있던 과거의 장소성이 오늘을 만나는 모습이 그것이다.
작업의 시작은 당연히 철거였을 것이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새로이 할 것인가?’, 재생 프로젝트에서 피할 수 없는 고민을 거쳐 공간은 건물의 크기가 주는 압도적 공간감과 이를 더욱 고조시키는 라멘구조의 규칙적 반복을 가장 본질적인 요소로 남겨놓고 있다. 그렇게 새로이 탄생된 공백에는 건물 길이만큼 낮고 연속된 개구부가 열려 있어 어디에서나 제주바다의 수평선과 해안의 풍경을 만나게 된다. 건물 전면에 듬성듬성 뚫린 개구부는 또 제주의 하늘을 담아낸다. 두 번째 건물에서도 같은 질서가 부여되어 있다.
공간 내부에 띄엄띄엄 자리하는 칸막이벽은 과거를 기념하는 일종의 조각품처럼 다루어지고 있다. 2m 간격으로 배치된 지붕 트러스와 구멍 난 슬레이트 지붕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시멘트 바닥을 뚫고 언젠가부터 자라난 나무 역시 장소성을 떠올리게 하는 오브제처럼 서있다
빈 곳, ‘공백’은 휴게음식점을 포함한 복합문화시설이다. 제주바다처럼 드넓은 배경이 되어 문화예술을 소화할 수 있는 다목적공간, 갤러리 등으로 사람들의 요구를 반영한다. 작품들을 드러내기에 앞서 공간 그 자체 또한 신선한 감동과 파동을 먼저 건네게 될 것 같다. 때때로 공간 안팎을 넘나드는 제주의 비와 바람과 빛과 아득한 파도소리와 더불어 폐허의 적막함에서 피어난 시크한 현대적 감각에 매료되기에 충분하다.
작품명: 공백_언터처블 하트 / 위치: 제주도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동복로 83 및 85 / 사무소: 건축사사무소 에스에프 랩 / 건축가: 최무규 / 설계담당: 신해철 / 시공: 주.이웨이 (박광옥, 유제동) / 조경설계: 마실누리 (안상수) / 건축주: 주.공백 / 용도: 근린생활시설 (카페 및 갤러리) / 대지면적: 5,071.00m² / 건축면적: 1,592.93m² / 연면적: 1,731.17m² / 규모: 지하 1층, 지상 1층 (4개동) / 구조: 철근콘크리트 / 마감: S.ST.316/304, 에폭시계 테라죠, 반사필름, 강화유리 / 완공: 2019 / 사진: 노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