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리노베이션
Korean catholic martyrs’ Museum Renovation
전시장 입구의 큼직한 스카이라이트가 높은 천장에서 환한 빛으로 쏟아져 내리고 있다. 위로부터 내려온 빛이 공간을 채우는 광경이 마치 순교의 영적 계시를 물리적으로 옮겨 놓은 것 같다. 기둥과 보가 그대로 드러나 있고, 탄화 목재가 따뜻한 느낌으로 벽체를 채우고 있다. 골조의 힘찬 리듬, 목재의 온화한 질감, 철재 텐션로드의 팽팽함, 가늘고 긴 목재의 비례, 이들이 어우러져 박물관 특유의 엄숙함, 고요함, 긴장감 등의 정서를 만들어낸다.
병인순교 100주년 기념 성당과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은 건축가 이희태의 설계로 1967년 완성되었다. 시원하게 뻗은 처마와 우아한 지붕 선이 아름다운 건축물로, 한국 전통 건축의 미학이 현대적인 건축 언어를 통해 정교하게 발현되어 있다. 그 동안 여러 번에 걸쳐 설비를 보강하고 리모델링해 왔지만, 방문객이 연간 30만 명을 넘어서면서 또 다시 리모델링이 이루어진 것이다.
덜어내는 것으로 일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10년 전 리모델링 때 만들어진 계단과 칸막이가 사라지고 없는데, 덕분에 전시장이 기존보다 2배 넓어져 있다. 천장 역시 달라진 모습이다. 천장 속에 묻혀 있던 항온항습 및 소방 설비를 대체하는 특별 설비 시스템을 수직 벽을 따라 재배치하고, 기존 천장을 완전히 덜어내 천장고가 높아져 있다. 건물 완공 당시의 골조가 고스란히 노출되면서 오랫동안 숨어 있던 스카이라이트도 그제야 환하게 드러난 것이다.
높아진 층고를 이용해 중층에 브리지가 떠 있다. 상설전시 공간의 관람이 끝나갈 즈음 이곳으로 오르는 계단을 만난다.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계단이다. 순교가 영적 도약의 길임을 공간적 도약을 통해 일러주는 듯하다. 브리지는 상설전시실 벽을 따라 순회하는 트랙 형태로 길을 낸다. 지면으로부터 들려 있는 길을 걷는 행위는 새로워진 박물관이 선사하는 가장 중요한 경험이다. 계단과 순환 브리지를 매개 삼아 오르고, 건너고, 순회하는 순례의 행위가 시간과 공간의 형식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상설전시장에서 끝나는 공간의 서사는 지하 1층 기획전시실에서 새로이 전개된다. 이곳 역시 불필요한 칸막이와 계단을 치우고 답답해 보이던 천장을 모두 걷어낸 모습이다. 덕분에 기존에 없던 기획전시실이 별도로 마련된 것이다. 50년 만에 드러난 본래의 뼈대가 전시공간에 힘찬 리듬과 아름다운 질서를 부여한다. 어둠이 깊은 계단을 지나 환한 전시실로 안내되고, 다시 캐노피 아래 새로 마련된 출구로 이어진다. 따뜻한 느낌의 목재 벽이 마지막 공간을 온화한 분위기로 감싼다.
과거를 뒤로 하고 나오면 절두산 성지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박물관 외부 회랑으로 이어진다. 다시 현재의 시간으로 돌아온 것이다. 소나무가 지키고 선 절두산, 반짝이는 한강의 물결, 우뚝 선 김대선 신부상, 눈앞에 보이는 성지의 현재와 박물관에서 경험한 순교의 역사가 만나는 시간이자 공간이다. 내외부 모두에서, 본래 있던 것과 새로 만들어진 것이 하나로 만나 순교의 서사로 완성되고 있다. 역사 속 시간들이 공간이 되며, 그 공간이 한 편의 서사로 또 사건으로 흐르는 장면이고 길이다.
작품명: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리노베이션 / 설계: 경영위치건축사사무소 + 김승회(서울대학교) / 설계담당: 백남혁 / 위치: 서울특별시 마포구 토정로6 / 용도: 종교시설 / 대지면적: 9,137㎡ / 건축면적: 986.21㎡(변경없음) / 연면적: 1,773.50㎡(중축 82.47㎡) / 규모: 지상2층, 지하2층 / 건폐율: 10.79% / 용적률: 11.70% / 구조: 철근콘크리트조,연와조,철골조 / 내부마감: 애쉬탄화목, 석고보드, 저철분유리, 갈바륨강판 / 구조설계: 한구조엔지니어링 / 시공: 이안알앤씨 / 기계설계: 정인엠이씨 / 전기설계: 지성설계 컨설턴트 / 설계기간: 2019. 1. ~ 2019.10 / 시공기간: 2020.6. ~ 2020.11 / 건축주: (재)천주교서울대교구 유지재단 / 사진: 노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