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연방
틈틈이 남겨진 벽돌의 잔해에서 깊은 연륜이 전해진다. 거칠고 투박하게 서 있는 콘크리트 기둥들에서는 지난한 세월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가공되지 않고 오직 세월의 흐름에만 맡겨진 오래된 것들의 자연스러움이다. 그 표정에는 그저 새것을 좇기보다는 기존의 것을 정성스럽게 다듬은 검소함은 물론이고, 친근함과 익숙함도 빼놓을 수 없는 정서로 담겨 있다.
지금의 시대와는 다른 기운으로 제법 넓게 펼쳐져 있어서 자칫 지루한가 여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건물이 완공되고 난 후에 각각의 특징 있는 프로그램들이 입주하고 그들의 상상과 현실이 더해지면서 공간은 각각의 모습으로 풍요로워져 있다. 휑하게 비어 있는 거친 벽면에 독특한 사인물이 걸려 있기도 하고, 벽의 색감과 질감이 공간의 주제에 따라 제각각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기도 하다. 공간을 채우고 있는 가구와 각종 오브제에 따라서도 각기 다른 이야기와 감성을 뿜어낸다. 현재는 물론이고 앞으로 새로이 채우게 될 프로그램에 따라 공간에는 어떤 변화도 일어날 수 있다. 심지어는 건물의 이전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각각의 공간들이 그 다채로운 변화를 기대하며 밑그림만 깔아 놓고 기다리는 것은 그러해서다.
대신, 전체적인 리노베이션은 쉽게 변하지 않는 요소들에 보다 집중하고 있다. 건물의 내부보다는 두 동의 건물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외부 공간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다. 기존에 나 있던 발코니가 더 연장되고 두 건물이 연결됨으로써 동선이 이어지고 있다. 두 건물 사이로 사람들이 유유자적하게 흐르기를 의도하고 유도한 것이다.
또 하나 집중하고 있는 부분이 건물의 구조에 관해서다. 기존 건물에 새로운 구조물이 덧붙여져 있는데, 이 시대의 건축언어가 활용된 것이 아니다. 건물이 지어진 시기인 1960년대에서 1980년대 사이 유행하던 건물의 조형 원리가 차용되어 있다. 광장이 적정한 비례로 조성되고 오래된 디자인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습식기둥이 재현된 모습이다.
시간의 흐름을 타고 변화의 움직임은 끊임없이 몰려온다. 그 와중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고 시대나 유행을 타지 않을 것이라는 장소의 가치를 뿌리 박은 작업으로 이해된다. 앞으로 어떤 새로운 상업 시대가 다가온다 하더라도 변화에 관해 유연한 프레임을 갖춘 동시에 나름 유구한 시간을 지켜 온 연륜 있는 공간이라는 가치를 젊잖게 드러내고 있다.
작품명: 성수연방 / 위치: 서울시 성수동 / 설계: 푸하하하 프렌즈 / 대표 건축가: 한승재, 한양규, 윤한진, 장서경, 온진성 / 연면적: 1,994m² / 완공: 2019 / 사진: 석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