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이채윤, 박정란 인턴기자 글 전효진 기자
2021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또 다른 오프라인 전시장인 서울도시건축전시관에서는 ‘게스트시티전’과 ‘서울전’이 열린다. ‘회복력 있는 도시의 미래’라는 주제 하에, 오늘날 전 세계 도시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와 이를 풀어내는 각양각색의 해법을 소개하고 나아가 우리 앞에 펼쳐질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그려보는 전시다. 각 도시들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한다는 측면에서, ‘도시들의 네트워킹 플랫폼’이라 해도 좋을듯하다.
게스트시티전
사람 키의 몇 배는 되는 스틸 컴퍼스들, 그 위에 매달린 움직이는 스크린, 거기서 흘러나오는 영상과 바닥에 투사되는 그래픽. 도시건축전시관 지하 3층, 공상 과학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이 공간은 바로 게스트시티전 전시장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도시는 이상 기후와 재난, 질병이라는 공통의 위기 앞에 놓여있다. 그런가 하면 인공지능과 자동화로 대변되는 첨단 기술은 도시와 도시에서의 삶을 엄청난 속도로 바꿔가는 중이다. 서울대학교 최춘웅 교수가 큐레이터로 참여한 ‘게스트시티전’은 전 세계에서 모은 17개 도시의 사례들을 통해 도시의 현재와 미래를 얘기한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사로잡는 건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압도적 크기의 스크린이다. 전시장 어디에서나 보이는 3개의 스크린에서는 시종일관 강물에서 바라본 도시의 풍경이 흘러나온다. 스위스건축박물관에서 이뤄지고 있는 전시를 그대로 재현한 ‘수영하는 도시: 바젤, 베른, 제네바, 취리히(GC14)’다.
강에서 하는 수영은 도시를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눈앞에 흘러가는 것은 강물이 아닌 도시이기 때문. 영상은 바젤, 베른, 제네바, 취리히, 4개 도시의 강에 뛰어들어서 수영하는 사람들의 시선으로 촬영한 도시를 보여주며, 그 시선으로 도시를 경험해 보길 권한다. 나아가 수영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를 통해, 강을 도심에서 삶의 질을 높이는 공공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음을 증명하며, 공공공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힌다.
강에서 수영하는 영상이 흘러나오는 대형 스크린 옆에는, 지표면 위와 아래의 다양한 모습들을 담은 일곱 개의 모니터가 원형으로 놓여있다. 그 가운데 서는 것만으로도 마치 땅 아래와 하늘, 그 사이 어디쯤에 머물러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지각의 구역(GC20)’이라 이름 붙인 이 작품은 실제로 지하 200m부터 지상 200m 사이의 모습을 비추고 있다. 우리가 사는 지구에서 가장 예민한 구역인 이곳은 생명체들이 지구와의 상생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가는 곳이자 인류의 대다수가 살아가는 곳이다. 또한 남획과 해안선 개발 등 인류의 과학 기술적 행동이 이뤄지는 곳으로, 자원이 착취되는 곳이기도 하다. 일곱 개의 스크린은 인간에게 가장 많이 지각된 이 구역의 모습과 이 구역에 얽혀 있는 다양한 에너지와 정보들을 보여주며, 이곳을 기후 변화와 해수면 상승에 대한 이해의 시발점으로 삼기를 권한다. 더불어 현대 사회가 대면하고 있는 환경 파괴와 변화를 해결하려면 현대 도시들의 공간 활용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제안도 하고 있다.
스위스와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물’을 활용한 도시도 있다. 동아시아 열곡인 ‘그레이트리프트밸리’를 따라 위치한 3개 도시, 텔아이브-야포, 아디스아바바, 베이라는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폭염과 돌발적인 홍수, 해수 범람과 같은 재해에 시달리고 있다. 콜롬비아 도시디자인 스튜디오는 이러한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물’을 이용한다. 열곡의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물’, 식물과 동물, 사람과 공기를 모두 연결시킬 수 있는 ‘물’이 회복적인 도시 디자인의 핵심이 될 수 있다는 시각으로, 새로운 형태의 도시 거주를 제안하는 것이다. 물에 내재된 복잡한 속성을 포용하는 새로운 형태의 도시 거주가 다소 미래 지향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세계 경제와 지역 경제를 연결하는 생태적 삶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충분히 발전시켜볼 만한 전략임에는 틀림없다.
설치 미술품을 연상케하는 작품들로 빼곡한 전시장 한편에, 검은색 암막 부스가 놓여있다. 커튼을 젖히고 들어선 부스 안에서는 왠지 휑한 분위기의 공항 영상이 흘러나온다. 영상 속 주인공은 1948년 개항하여 60여 년간 베를린의 관문 역할을 하다가,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국제공항이 개항하면서 지난해 11월 폐쇄된 테겔공항. 4분할된 스크린은 테겔공항의 활주로, 공항 구석구석, 공항 주변 풍경, 그리고 공항 주변을 향유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추고 있다. 영상에 담긴 500 헥타르 규모의 부지는 대규모 산업 및 연구단지와 주거지로의 변신을 앞두고 있는 상황. 3분 40초가량의 영상 작품인 ‘다시 생각하는 도시: 새로운 미래 형성, 베를린 테켈공항(GC03)’은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의 재탄생을 앞둔 도시 인프라에 대한 마지막 기록으로, 도심 공항의 폐항을 성장하는 도시를 위한 부지의 개조, 재검토, 용도 변경, 재사용의 기회로 삼은 베를린의 사례를 통해 회복력 있는 도시 개발의 모델을 발견하게 된다.
서울전
게스트시티전을 관람하다 보면 해외 사례들 사이사이에 눈에 익은 도시의 모습이 보이곤 한다. 도시건축박물관의 두 번째 전시인 서울전의 참여작들이다. 서울전은 서울이라는 도시를 심층적으로 들여다본 17개의 작품을 통해, 오늘날 서울이 마주하고 있는 위기 상황들이 다른 세계 도시들, 나아가 지구 전체의 생태계와 순환적 고리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게스트시티전과 서울전의 전시 공간을 명확히 분리하지 않은 것도 이러한 취지를 반영한 것. 서울이라는 하나의 도시를 다루고 있지만, 변화하는 인구, 기술, 환경 등을 다룬 타국의 도시 사례들과 얽히면서 생산적인 대화를 이끌어내고, 종국에는 더 나은 서울의 미래를 그려보자는 것이다.
이러한 서울전은 서울시의 연구 프로젝트와 정책, 커미션 작업으로 구성된다. 그중 연구 프로젝트와 정책 사례는 기후 위기, 지속 가능성, 도시 재생, 스마트 시티, 팬데믹 등, 다섯 가지 크로스로드에서 뻗어 나온 키워드들을 주제삼아 진행된 작업들로, 서울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진단해 볼 수 있다.
기후 위기를 극복을 위한 서울시의 선제적 대응 방침을 다룬 ‘2050 온실 가스 감축 계획(S01)’, 오랜 역사를 지닌 서울역 일대를 시민과 도시를 위한 통합적 재생공간으로 변화시키는 모습을 담은 ‘서울역 일대 도시재활성화(S04)’ 등의 정책 사례를 소개하는가 하면, ‘키움센터(S05)’, ‘ 포용도시(S06)’와 같은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변화하는 사회와 사회를 구성하는 인구 변화에서 비롯된 도시의 현 상황을 살피기도 한다. 또한, 미래 모빌리티에 대해 이야기하는 ‘스마트 모빌리티(S09)’, 팬데믹으로 맞닥뜨린 도시와 건축의 위기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질문을 던지는 ‘코로나 그 이후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가?)(S10)’ 등은 서울의 미래를 그려보는데 좋은 밑그림이 되어준다.
정책 및 연구 사례들 사이사이에서는 눈길을 사로잡는 대형 작품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여섯 작가의 커미션 작품들로, 각각 서울의 미래를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하며 관객들의 흥미를 이끈다.
전시장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스크린에 화려한 색감의 지도가 띄워져 있다. 레트로 풍의 게임 장면을 연상케하는 이 작품은, 서울을 촘촘하게 메꾸고 이어 붙이고 있는 ‘길’과 ‘모빌리티’에 주목한다. 핵심 아이디어는 차도, 인도, 작은 골목, 지름길 등, 모빌리티의 변화에 따라 길도 변하고 길을 찾는 사람들의 감각도 달라진다는 것. ‘핀볼 게임(S17)’ 속에서 모빌리티를 이용하는 도시민들은 게임의 유저가 되어 조건에 따른 선택지를 계속해서 마주하고, 그 안에서 모빌리티와 공존 혹은 경쟁을 하며 흘러가는 유저들의 인터페이스는 콜라주 되면서, 도시를 이루는 뼈대와도 같은 길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그런가 하면 ‘코어(S16)’는 모듈식 목조건축 블록을 기반으로 한, 완전 자동화된 주거 시스템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이다. 건축 모듈은 특정한 의미나 기능이 없으나 끊임없이 다양한 형태로 조립될 수 있다. 이를 활용하면 부지 면적이 좁고 경사가 많은 서울의 까다로운 지형에도, 거주자의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며, 동시에 효율적이기까지 한 주거 공간 구축이 가능하다는 것. ‘집’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만큼, 실용화 방안을 충분히 고민해 볼 만한 제안이다.
여섯 개의 커미션 작품은 온라인으로도 만나 볼 수 있지만, 전시장 곳곳의 공간의 특징을 반영하여 설치된 작품이므로 현장을 방문하여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까이서 느껴보는 것을 추천한다.
현장 프로젝트
도시건축비엔날레의 마지막 오프라인 전시장은 ‘세운상가 일대’다. ‘현장 프로젝트’라는 이름에 걸맞은 완전한 경험의 공간으로, ‘관람’이 주가 되었던 지금까지의 전시들과는 달리 관객이 직접 걷고 만지며 ‘감각’하는 체험형 전시다.
큐레이션을 맡은 푸하하하 프렌즈는 다섯 명의 작가와 다섯 팀의 건축가를 초대하여, 세운상가 일대를 도심 속 놀이터로 바꿔놓는다. 도시를 거대 담론의 측면이 아닌 지극히 사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자는 취지다. 맨홀 뚜껑을 밟고, 막대기로 벽을 두드리며, 자기만의 규칙화 표식으로 저마다의 지도를 만드는 아이들처럼, 이곳을 찾는 이들이 지극히 개인적인 도시, 나만의 서울을 발견케 하자는 것이다.
매개체는 바로 ‘문학’이다. 다섯 명의 작가는 스케일과 단위를 키워드로 삼아 도시에서의 개인적인 경험을 서술하고, 다섯 팀의 건축가는 그들이 서술한 사적인 이야기를 물리적인 공간으로 구축하는 것. 그렇게 만들어진 다섯 개의 구조물은 익숙한 도시에 낯선 모습으로 등장하여, 시민들에게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현장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리는 건 세운교 광장에 자리 잡고 있는 파빌리온이다. 그런데 가설 펜스로 둘러싸인 모래 뜰, 그 안에 설치되어 있는 스피커들, 거기서 흘러나오는 문학 작품이라니, 도심 한복판에서 마주치기에는 그 모습도 용도도 낯설기 그지없다. 정체가 심히 ‘의심스러운’ 파빌리온은 이름마저도 ‘의심스러운 발자국’이다.
파빌리온의 메인 기능은 현장 프로젝트의 전시 정보를 전달하는 플랫폼이다. 하지만 여느 안내소처럼 방문객들에게 친절하지는 않다. 원하는 정보를 즉각적으로 찾아낼 수 있는 보통의 안내소들과는 달리, 이곳을 찾은 방문객들은 가설 펜스로 둘러싸인 의심스러운 장소에서 모든 것을 의심스럽게 관찰해야 하며, 그나마도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오래 머물러야 한다. 오래 앉아서 소리를 듣고, 어린 시절처럼 땅을 파헤치며 놀기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정보는 어느 순간 차분한 소리로 전달되고, 곳곳에 숨겨진 사물의 형태로 발견된다. 동시에 또 하나의 의심을 품게된다. 어쩌면 이 파빌리온의 목표는 작품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작품들 속에서 함께 호흡하고 감각하는 방법을 일깨우려던 게 아니었을까.
의심스러운 파빌리온을 뒤로하고, 산책을 위해 공중 보행데크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데크로 올라가는 계단에 드리워진 샛노란 무언가가 금새 다시 눈길을 사로잡는다. 노란색 전기 케이블로 짠 비계, ‘세운상가의 그물망(L05)’이다. 세운상가의 변화의 역사와 커뮤니티, 그리고 장인들에서 영감을 받아, 세운상가 도처에서 구할 수 있는 ‘전선’을, 이곳의 얽히고설킨 기억처럼 ‘그물’로 엮어, 변화를 상징하는 건축 구조물인 ‘비계’를 만든 것.
흥미로운 비계를 지나 올라간 보행데크에는 또 다른 구조물이 기다리고 있다. ‘공상의 방(L04)’이라는 이름의 ‘벽’이다. 세운상가와 대림상가를 잇는 다리 사이에 설치된 이 벽은 도시와 자연의 경계막이 되어, 캐노피 아래 공간을 느슨하게 구획된 코로나 시대의 방으로 변모시키며, 누군가 멍하니 청계천을 바라보며 공상에 잠기길 부추기는 인공적 장치로 작동한다.
보행데크 끝부분에 다다르면 데크의 전망대 역할을 하는 계단이 나타난다. 해상도에 빗대어 도시를 바라보는 글에서 착안해 만든 이 전망 계단은, ‘한 개의 현장, 네 개의 시나리오(L06)’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한 장소에서 4개의 응시점을 보여준다. 을지로의 오래된 좁은 골목, 종각타워, 삼일빌딩 등의 근대 건물, 조선왕조의 종묘, 공사현장 등 다양한 뷰를 각각의 프레임을 통해 집중적으로 바라보게 함으로써, 현장 프로젝트의 기획 의도대로 이곳을 찾은 시민들에게 새로운 도시 경험을 제공한다.
다양한 주제로 서울 시내 곳곳에서 진행 중인 2021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는 오는 10월 31일까지 계속된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는 어떤 모습인가? 내가 느끼고 경험하는 나의 도시는 또 어떤 모습인가? 그렇다면 나는 어떤 도시에 살 것인가?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에서 그 답을 찾아보길 바란다. 사진 / 이채윤 인턴기자, 박정란 인턴기자, 현장 프로젝트 사진 / ⓒMH photography (서울시제공)
→ [2021 서울비엔날레 vol.1] ‘크로스로드, 어떤 도시에 살 것인가?’ 개막
→ [2021 서울비엔날레 vol.2] 주제전·도시전·글로벌시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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