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쿠스·디자인·포럼
한·중·일 공동프로젝트 ‘서(書)·축(築)전’, 일본 도쿄서 열려
한국, 중국, 일본. 동아시아 3국은 역사 속에서 협력과 경쟁, 갈등 관계를 유지하며 공존해 왔다. 말 그대로 ‘가깝고도 먼 이웃’이다. 최근 독도, 동북공정 등 영토 문제 뿐만아니라, 위안부, 교과서 왜곡 등 정치·사회 문제로도 잡음이 끊이지 않으며 삼국을 둘러싼 갈등의 골이 깊어만 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지나친 대립보다는 협력을 위한 소통이 필요하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젊은 층 사이에는 갈등의 벽을 넘어 문화를 매개로 소통이 시작된 지 이미 오래다. 3국의 문화 공감대 중 하나로 꼽히는 ‘한류’가 그 시발점이었다. 하지만, 상업적이고 일시적일 수밖에 없는 대중문화의 속성상, 반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돼 왔다. 이제는 이를 물꼬로 더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문화교류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때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화예술계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한 지금, 뜻을 함께한 한·중·일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의 움직임이 눈에 띈다. 삼국이 공유해온 과거의 문화를 현재, 나아가 미래로 함께 이어 나아가고자, 뜻있는 문화계 인사들이 모여 ‘로쿠스·디자인·포럼’을 조직했다. 한국의 파주출판도시 이기웅 이사장과 일본의 건축가 후미히코 마키가 커미셔너를, 이대준 한동대학교 교수, 한국, 류징런 칭화대학교 교수, 중국, 노리히코 단 건축가, 일본 이 대표간사를 맡고 있다. 로쿠스·디자인·포럼에서 주최하는 첫 기획전 <서(書)·축(築)전>이 지난 11월 7일부터 18일까지 일본 도쿄 힐사이드포럼에서 열렸다. 내년에는 한국 파주와 중국 북경에서도 순회 전시를 열 계획이다.
<서(書)·축(築)전>, 책과 건축의 만남
<서·축전>은 이름 그대로 책(書)과 건축(築)의 만남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책과 건축의 의미가 빠르게 변화하는 오늘날, 디자이너와 건축가의 만남을 통해 책과 건축의 가능성을 개척하고자 기획됐다.
전시는 각국을 대표하는 건축가와 디자이너로 구성된 초청작가 총 12팀(24인)의 작품과 국제공모전 수상작들로 이뤄졌다. 한국에서는 승효상·홍동원, 이대준·최만수, 조병수·이나미, 김헌·안지미가, 중국의 팡 샤오펭·류징런, 어바너스·우 용, 아틀리에 데스하우스·쟈오 칭, 수 티엔티엔·샤오 마게, 일본은 가즈요 세지마·히다카 에리카, 다케야마 기요시 세이·미키 켄, 노리히코 단·칸 아키타, 소우 후지모토·켄야 하라가 초청작가로 참여했다.
‘책이라고 하는 우주’를 주제로 열린 국제공모전에는 105 작품(일본 78, 중국 11, 한국 9, 대만 5, 독일 1, 미국 1 작품)이 접수된 가운데, 총 39 작품이 입선을, 4 작품이 로쿠스디자인상을 받았다.
심사위원장은 일본의 스기우라 고헤이가 맡았다. 고헤이는 도쿄예술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1950년대 후반부터 잡지, 카탈로그, 포스터 등의 디자인을 시작해 1970년 즈음부터는 북 디자인, 전시 기획 및 구성 분야에서 활약했다. 오늘날까지 평생을 북 디자인에 헌신하여 책, 문자, 디자인에 관한 사상가의 반열에 오른 입지적 인물이다. 심사위원으로는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북 디자이너인 소부에 신(일본), 야하기 기주로(일본), 건축가 노리히코 단(일본), 북 디자이너 류징런(중국), 건축가 이대준(한국)이 참여했다. 책의 정의, 책과 문자의 관계, 책과 예술, 건축으로서의 책, 책 전시의 방법, 서양의 모던과 아시아의 지역성, 오늘날 책의 의미 등을 주제로 4시간에 걸친 토론 끝에 당선작을 정했다. 출품작 대부분은 각자의 해석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매우 독특한 작품과, 실제로 서점에서 유통되고 있지만 실험적인 작품으로 양분화되어 있었다. 야마다 가즈히로의 ‘천지天地’, 히구치 히로또의 ‘차지 북Charge Book’, 야마모토 류의 ‘파내기와 짓기Scrapings & Buildings’, 모리 아야노시의 ‘서적의 부재’로 총 4작품이 로쿠스디자인상을 수상했다. 스기우라 고헤이는 이번 수상작들에 대해, 모두 책이 감싸고 있는 미지의 가능성에 도전하려는 작품들이었다며, 오브제가되어 실제 존재하는 책, 사실적인 존재로 눈앞에 나타나 손으로 만져서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물체가 되는 작품, 액정판 건너편에서 환하게 빛나는 가상존재인 전자책과는 획을 긋는 이러한 작업들이 책의 미래 가능성을 탐구하기 위한 좋은 모델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