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관
에디터 현유미 부장 글 황혜정
자료제공 이로재 건축사사무소
머리에 박공지붕을 이고 있는 목재 건물 하나가 전부다. 그마저도 지붕과 벽면의 색감이 온화하고 부드러워 존재감이 참 소박하다. 제주 특유의 나지막한 돌담이나 이웃한 전통가옥보다 높다란 것이 민망하다는 듯 그 외에는 더 이상의 공간적 소음이 일절 없기를 바라는 모습으로 서 있다. 단순하다 못해 흔하디흔해 보이는 그 모습에 실망했는지, 대단한 건축물이 들어서리라 기대하던 이웃들이 ‘감자 창고’라고 빈정대기도 한다. 하지만, 건축물이 귀가 있다면 자축하고 자랑스러워할 만한 평가가 아닌가 싶다. 추사 역시도 감자 창고 같다는 자신의 기념관을 흡족해 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제주에서의 추사의 삶을 들여다본다면 그의 기념관은 비워내고 덜어낸 정제된 감자 창고여야 함이 마땅하다.
제주는 과거 가장 험한 유형지로 꼽힌다. 유배인들이 한으로 일군 유배 문화가 땅 속 깊이 배어 있는 지역이다.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는 그 유배의 중심인물이다. 조선 말기 최고의 지성으로 평가되던 추사는 제주에서 8년 동안 유배생활을 지속하면서 외로움, 고독, 혹독한 삶의 형편들에 대해 한을 최고의 예술적 경지로 승화시킨다. 송곳으로 찍은 듯한 글씨는 그러한 현실적 아픔의 산물이다. 당연히 기교나 욕망 따위가 끼어 들 틈이 없었을 것이다. 세상사에 대한 욕망과 불순물이 모두 제거된 그를 건축은 가감 없이 그대로 기술하고 기념하고 있다. 그래서 참 정제되어 있다.
주어진 땅은 대정현 성벽과 이웃하고 있다. 왜구의 침입을 막고 현을 보호하기 위해 쌓은 읍성의 터로, 작은 규모의 질박한 가옥들이 옹기종기 모여 소담스러운 마을 풍경을 일구고 있는 곳이다. 집도 담도 평지 위에 나지막하게 깔려 있다. 전시관이라 하더라도 연면적 350평이 이곳에서는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다. 자칫하면 기존의 마을이 지켜 온 모든 균형을 깨뜨릴 수도 있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보이지 않는 건축이 만들어진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거의 모든 공간들이 지하에 배치되어 가려져 있고 지상에 드러난 건축물은 최대한 작고 단순하게, 그래서 최대한 조용하도록 존재감에 주의를 기하고 있다.
지하의 공간이지만 선큰 마당을 통해 채광과 환기가 가능하다. 특히 지하로 들어오는 모든 자연광이 부드럽게 번져 나가며 어둠을 서서히 밝히는 듯하다. 지층의 바닥면을 따라 나 있는 띠 창과 선큰을 거치면서 직사광이 간접광으로 순화되는 덕분으로, 전시장의 분위기를 한결 차분하고 온화하게 만든다. 전시장 관람이 끝나면 지상을 향해 열린 공간에 다다른다. 땅 위로 이끄는 계단을 밟고 오르는 길은 모든 것이 비어 있고 침묵만 남은 여정이다. 전시관을 통해 기념해 본 추사와 마지막으로 대면하며 묵상하게 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작품명: 추사관 / 위치: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추사로 44 / 건축가: 이로재 건축사사무소 (승효상) / 구조설계: Seoul architects & Structural Eng. / 기계: SeAh Eng. / 전기: WooLim E&C / 조경: Seoahn Total Landscape / 대지면적: 5,245m² / 건축면적: 236m² / 연면적: 1,191m² / 완공연도: 2010 / 사진: 김종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