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 앉은 집
Corridor
건축사사무소 아르키움 + 김인철 | Archium + In Cheurl Kim
언덕진 땅을 가만히 밀고 나와서는 곧장 뻗어나가 있다. 허공에 떠 있는 형상이어서 굴곡진 지형에 구애 받지도 않는다. 밀고 나온 모습 그대로 기세 좋게 땅을 가로질러 또 하나의 언덕을 면하기 적전에야 멈추어 있다. 편리함을 우선으로 조직화되어 있는 도시의 보편적인 공간에서 이름 그대로 복도만 남겨 놓은 것 같다. 기다란 그 공간을 따라 각 실들이 나열되어 있다. 빠듯함이나 분주함이 사라지고 공간도 시간도 직선으로 유유자적하게 흘러가는 듯하다.
집은 필로티로 떠 있다. 고르지 못한 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다.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을 거치며 이루어진 대자연 그 자체로서의 땅을 마땅히 존중하며 뿌리 내리고 있는 모습이다. 자연을 찾아가는 행위가 자연을 망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건축이 땅의 결을 따라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그것은 땅을 대하는 집의 자세로서, 필로티로 떠 있는 지층을 따라 땅도 산바람도 막힘없이 이어져 흐른다.
집은 전후에 자리하는 산의 풍경도 가로막지 않는다. 완고하게 구획해 놓은 것이 아니라 느슨한 경계를 만들어 안과 밖을 시각적으로 이어 놓은 덕분이다. 물리적인 구획은 당연하지만, 그 존재감이 옅어지도록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 투명한 창으로 벽을 열어젖힌 것이다. 가까운 수풀과 멀리 조망되는 산 능선들까지, 하늘과 볕까지, 집을 통로 삼고 프레임 삼아 잠시 멈추고 걸러질 뿐 계속해서 통하여 흐른다. 대자연의 풍경 속에 건축이 있고, 건축 안에 자연이 담기고 오가며 흐르는 광경이다. 새롭고 낯선 공간이 익숙하지 않은 시간과 일상을 제안하는 게 한동안은 어색하고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감각은 곧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자연과 동화되리라 기대한다. 긴 복도의 곳곳에서 만나는 풍경에 익숙해지고 방과 방 사이로 틈틈이 스미는 햇살과 바람소리를 즐기는 시점에는 뒷산의 숲과 앞마을을 모두 일상의 영역으로 누리게 될 것이다.
기다란 계획은 굴곡진 땅의 형국에 손을 대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더불어, 제한이 풀리지 않고 있는 보존녹지의 한계선으로 인해 그려진 그림이다. 두 가지 모두 제약 조건이 아니라 긍정으로 받아들인 태도다. 덕분에 기존의 보편성과는 다른 새로운 일상,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이다. 일상의 변화는 불편함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 비합리적일 수 있다. 하지만, 도시에서 전원으로 일상을 옮기겠다는 것은 이렇듯 기존의 익숙함을 버리고 새로운 익숙함을 만들어 보겠다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게 마련이다. 느릿한 아름다움을 주는 자연을 취하는 대신 익숙함을 내어놓는 것으로 집은 우아하게 거래를 성사시키고 있다. 자신이 제안하는 일상의 변화가 곧 일상의 진화로 이어지기를 바라며!
작품명: Corridor – 숲에 앉은 집 / 위치: 경기도 양평군 강하면 성덕리 520-2외 두 필지 / 설계: 김인철+아르키움 / 용도: 단독주택 / 규모: 지상 3층 / 대지면적: 2,229m² / 건축면적: 432.675m² / 연면적: 336.575m² /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 마감: 노출콘크리트, T35 삼중유리 / 완공연도: 2007 / 사진: 박영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