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건축의 관심을 끄는 주제 중 하나는 바로 ‘지역성’이다. 세계화에 휩쓸려 전 지구가 비슷한 모습으로 변해버린 이 시점에서, 새로운 대안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특히, 케네스 프램프톤의 ‘비판적 지역주의(Critical Reginalism)’는 지역성에 주목하게 한 대표적 이론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의미 하나가 빠져있는 듯하다. 바로, ‘풍토(Local)’이다. 서 있는 땅, 그 자체에 주목하는 개념으로, 한 지역의 역사와 문화까지 포괄적으로 다루는 ‘지역(Region)’에서 한 단계 더 세분된 의미다. 그러나 더이상 지리적 차이만으18로는 지역의 구분조차 어려워진 지금, ‘지역성’의 미래를 ‘풍토’에서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9월 20일 이화여자대학교에서는 ‘건축의 지역성을 다시 생각하다’라는 주제로 승효상, 왕슈, 류에 니시자와, 한·중·일의 대표 건축가 3인의 강연이 펼쳐졌다.
그곳을 담아낸 건축, 류에 니시자와의 지역성
흐르는 듯한 공간, 대기와도 같은 가벼움이 인상적인 류에 니시자와의 작업은 경험적인 건축으로 대변되곤 한다. 이는 주어진 땅에서부터 출발하기에 가능한 건축이다. 건물이 뿌리내릴 땅, 주변에 펼쳐진 자연, 그곳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요소들, 한발 더 나아면 도시적 맥락에 이르기까지, 그의 건축에는 이 모든 요소가 녹아있다.
이날 소개된 9개의 작업은 이렇게 ‘땅’에 기반을 둔 그의 사고가 어떻게 건축으로 만들어지는가를 보여주었다. 특히, 뉴욕의 현대미술관이 대표적이다. 사실 뉴욕처럼 현대화된 대도시에서 그곳만의 특성을 찾기란 매우 어렵다. 때문에 애써 이곳만의 독창성을 찾으려 애쓰기보다는, 주어진 것들을 담담하게 담아냈다. 저층 건물이 밀집한 이곳의 도시적 맥락은 층별로 공간을 작게 분할해, 고층 건물이지만 주변에 어우러드는 스케일 속에 녹아들어 있다. 철제망을 외피로 사용한 이유도 다르지 않다. 이 일대에 철제 망을 만드는 전문가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단순하지만, 결코 주어진 장소를 놓치지 않는 건축. 그 땅에 이식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정체성을 건물에 이식한 건축. 류에 니시자와가 말하는 지역성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