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제1사옥
힘마건축(김준성 + 서혜림 + 박영일)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응시하고 싶은 것을 찾으려는 간절함으로 지층을 벗어나 솟아오른 또 하나의 땅이 아닌가, 혹은 바람에 순응하듯 깎이고 흩날리는 중인 거대한 암석이 아닌가, 상상해본다. 파주출판도시 안에 원래는 번역센터동과 사옥동의 두 채 건물로 계획된 프로젝트다. 사정상 사옥만 건축하고 중단된 미완의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혼자 들어선 건물의 정면이 오직 한 방향만 응시하는 ‘바라기’ 같은 모양새가 뭔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듯 애틋해 보인다. 물론, 원래대로 완성되었다면 또 다른 느낌이나 해석이 이루어지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리 읽히는 여지가 있어 더욱 인상적이다.
건물은 노출콘크리트 벽들로 구성되어 있다. 가늘고 기다란 수평의 선들로 가득 차 있는 벽들이다. 또 하나의 지층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런 모양새 때문이다. 숱한 세월을 거치면서 다져지고 다져져서 적층된 지층 같은 모습을 통해 인류사에서 활자와 책이 갖는 역사성을 떠올리게 된다. 건물을 구성하는 벽들은 또한 반듯하지 않다는 특징도 있다. 접혀 있고 꺾여 있으며 굽어져 있다. 동시에 한 방향으로 뻗어 있기도 하다. 바람에 흩날리는 암석이라는 모순적인 표현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시대마다 달리하는 시류를 따라 흐르긴 하지만 안에 담겨지는 진리는 요동하거나 변하지 않는다는 책과 글의 본질, 그 진중한 힘을 느끼게 된다. 구조물로 자리하는 콘크리트 벽들은 각기 다른 인공적인 지형을 건물 표피로, 그리고 건물 내부로까지 끌어들이면서 주변과의 연계성을 만들어내고 있다.
굽이치는 벽들 사이로 나 있는 기다란 창은 외부와 소통하는 눈이 되어 주변의 풍경을 지속적으로 인식하게 한다. 멀리 한강과 심학산의 원경까지도 내부로 깊숙이 끌어들여 내부에도 그 운치를 고스란히 전달한다. 유리라는 투명한 소재와 두터운 콘크리트라는 불투명의 소재, 두 이질적인 물성이 갖는 대조적 경험이 사이공간들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이러한 정서가 사이공간에 만들어지는 입체감과 더해지면서 강한 건축적 표정이 완성되고 있다. 낮에는 빛의 이동에 따라, 밤이면 내부 조명으로 인해 명암이 뚜렷하게 갈리기도 하고 명암의 농도가 달라지기도 한다. 그렇게 때를 따라 건물이 서서히 움직인다.
프로젝트: 파주 열린책들 제1사옥 / 대지위치: 경기도 파주시 문발동 521-2 / 대지면적: 1518.1m² / 규모: 지하1층, 지상4층 / 건축면적: 268.78m² / 연면적: 6657.15m² / 용도: 공장(사무실) / 재료: 노출콘크리트 / 구조: 철근콘크리트 / 설계: 김준성, 서혜림, 박영일 / 시공: 한울종합건설 / 기간: 2005.11 준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