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월의 제주
에디터 전효진 차장 디자인 한정민
자료제공 제이와이아키텍츠
집은 숨겨져 있다. 호리병 모양을 하고 있는 대지의 특성상 집으로 가는 길, 그 일련의 과정을 걸어 들어가야 한다. 대지 안의 열린 공간으로 안내하는 기다란 모양의 땅은 겹겹이 다른 켜들을 갖고 있었다. 약점일 수 있는 대지의 그 흐름을 오히려 제주만의 흡입력 있는 공간으로 살려내고자 고민했다. 덕분에 오래된 제주의 어느 뒷골목을 연상시키는 도입부를 구현해낼 수 있었다.
시작점이 되는 좁은 길을 따라 걷노라면 현무암 돌담과 노출 콘크리트가 함께 동행하며 이곳이 제주임을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서걱거리는 발소리는 또 어떤가! 바닥에 깔린 쇄석이다. 현무암 돌담과 쇄석, 시간의 흔적이 묻어나기를 기대하는 거친 콘크리트, 이 모두가 가장 자연스러운 제주의 일부로 다가갈 것이다. 돌담길은 다른 개념의 공간으로 이동하는 상징적 의미도 가진다. 복잡하고 번잡한 세상에서 오직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휴식공간으로의 진입이다.
눈과 귀를 돌담길의 매력에 빠져 걷다 보면 어느새 본채 앞이다. 환하게 활짝 열린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걸어 들어온 좁은 길을 금세 잊어버릴지도 모르겠다. 침실, 거실을 포함한 모든 공간이 투명한 외피로 감싸져 있기 때문이다. 마당과 마주하는 실내공간은 시각적으로 안팎이 따로 없다. 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현무암 돌담과 마당 곳곳에서 자라고 있는 이끼와 풀이 고스란히 눈 안으로 들어온다. 시선은 마당 안에 머물지 않는다. 담장 너머 동네 이웃들의 지붕들을 향하며 옹기종기 나지막하게 모여 있는 정겨운 풍경에도 감탄하게 된다.
1층 중앙에 자리한 원형 계단은 이 집의 비밀한 아지트 2층 다락으로 안내한다. 그야말로 사방으로 탁 트인 공간이다. 제주의 푸른 바다와 온갖 표정의 하늘을 한눈에 끌어들일 수 있다. 제주 시골동네의 고즈넉한 풍경과 멀리 내다보이는 한라산까지, 그곳에서는 1층과는 또 다른 제주를 마주하게 된다.
시야를 가리는 건물이 없으니 1, 2층 어느 곳에서나 하늘은 한 점 구김 없이 활짝 펼쳐져 있다. 높고 넓은 제주의 하늘이 널찍하게 트인 창으로 스며들며 공간을 한가득 채우고, 시간이 흐를 때마다 방향을 바꾸는 빛이 집안 곳곳에 이런저런 모양으로 그림자를 그려낸다. 하루의 호흡을 다 담아내듯 절기의 모든 순간순간 또한 놓치지 않고 머물게 할 것이다. 그 다채로움을 느릿하게 누릴 수 있는 집이다.
작품명: 류월의 제주 / 위치: 제주시 한림읍 금능리 / 설계: 주.제이와이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 책임 건축가: 원유민 / 책임 디자이너: 조장희 / 디자인팀: 김수빈, 김수연, 정회종, 성지은, 박지연 / 유형: 신축 / 주요 구조: 철근콘크리트 / 용도: 풀빌라, 단독주택 / 대지면적: 478m² / 건축면적: 144.29m² / 연면적: 153.93m² / 규모: 2F / 건폐율: 30.19% (법정 60%) / 용적률: 32.20% (법정 200%) / 외장 마감재: 콘크리트 노출 후 면손보기, 징크 / 내부 마감재: 석고보드, 합판위 도장, 포세린타일 / 구조: 한길구조 / 기계, 전기, 통신: 정연 / 토목: 한길구조 / 시공: 인고래(방세일 대표) / 완공연도: 2019 / 사진: JYA-RCHITECTS – 원유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