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 그로브
에디터 현유미 부장 글 전효진 차장
자료제공 에이알에이건축사사무소
스틸 그로브는 네 식구를 위한 단독주택이다. 대상지는 전형적인 주거밀집지역으로, 남쪽에는 4차선 도로가 맞닿아 있다. 거주자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되 외부와의 소통도 놓쳐서는 안 되는 땅이다. 또한, 대상지의 특성상 신축 공사 전에는 문화재 발굴조사를 진행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대지의 절반이 조선 시대 성곽의 일부였음이 확인됐다. 이러한 대지의 역사성을 반영해, 보호의 상징인 성곽을 닮은 입면, 가족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장치로서의 입면을 제안한다.
핵심은 길과 맞닿은 남쪽 입면이다. 촘촘히 세운 스텐파이프로 스크린을 만듦으로써, 외부의 시선은 차단하되 빛과 바람은 얼마든지 들일 수 있는 이중적인 입면을 구성한 것이다. 이러한 스크린에는 네 종류의 스텐파이프가 사용되며, 그 간격과 비율은 여러 번의 샘플 테스트를 통해 결정됐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남쪽 입면 덕분에 스틸 그로브는 프라이버시 보호와 외부와의 소통, 공존할 수 없을 듯했던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게 된다.
외벽 안쪽 영역, 집의 실질적인 영역을 구성하는 데는 전통 한옥의 요소들이 적용된다. 한옥에서는 앞마당, 뒷마당, 툇마루, 대청마루 등 집 곳곳에 배치된 다양한 외부 공간들이 상황에 따라 다양한 기능을 수행해 왔다. 하지만 현재 한국 주거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아파트는 이러한 외부 공간을 배제한 채, 주거 공간을 오로지 기능과 효율의 측면으로 분석하고 그에 따라 정형화된 평면을 제시하고 있다.
반면 스틸 그로브는 한옥 못지않게 다양한 외부 공간을 갖추고 있다. 대문을 열면 마주하게 되는 돌마당, 남쪽 입면 뒤에 조성된 앞마당, 거실과 부엌 사이에 놓인 중정, 그리고 부엌 뒤편에 자리하는 뒷마당까지 총 네 개의 외부 공간이 존재하는 것이다.
각각의 외부 공간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내부 공간과 매칭되느냐에 따라 다른 역할을 하게 된다. 특히 남쪽의 앞마당은 집안은 물론 집밖, 동네와도 관계를 맺고 있다. 해가 있을 때는 상대적으로 어두운 스텐파이프들이 닫힌 입면을 형성하지만, 해가 지면 스텐파이프 사이로 집안의 불빛들이 새어나가며 낮과는 달리 열린 입면으로 그 모습을 바꾸기 때문이다. 이렇게 스틸 그로브는 동네와 끊임없이 새로운 관계를 맺어나가며 마을 풍경을 다채롭게 만드는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작품명: 스틸 그로브 / 위치: 경상남도 김해시 동상동 722-8 / 설계: 에이알에이건축사사무소 (이주형, 강신일) / 프로젝트 팀: 신규성, 김동원, 임필균 / 인테리어: Mies & Louis / 구조설계: 단구조 / 전기설계: H&T / 대지면적: 343m² / 연면적: 272m² / 규모: 지상 2층 / 구조: 철근콘크리트 / 설계기간: 2016.7.~2016.11. / 시공기간: 2016.12.~2017.5. / 사진: 세르지오 피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