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연목서 (修硏木書)
에디터 현유미 부장 글 황혜정 편집 김예진
자료제공 이충기 + 비앤드건축사사무소
한적한 시골 풍경 가운데 앉아 있어서 적벽돌이 발하는 표정이 더욱 인상적이다. 적벽돌만으로 완성된 간결한 벽면 위에는 은빛 박공지붕이 소박하게 덮여 있다. 대지는 양쪽에 산을 끼고 남북으로 뻗은 도로와 접해 있다. 산, 도로, 대지, 농지, 하천, 산의 순서로 다섯 켜와 더불어 선을 이루며 달리는 길고 좁은 형상이다. 단순하고 간결한 선형의 벽면은 산과 길의 그런 흐름을 따른 것이고, 살짝 솟아 오른 지붕은 집 양쪽으로 자리하고 있는 산 능선을 의식한 듯 보인다. 이 두 요소가 집을 구성하는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가와 목공예가 부부의 공방과 갤러리 겸 북카페로 운영되는 공간이다. 사진 작품을 통해 산의 우직함과 나무의 진솔함을 담아내는 시선, 나무와 책에 대한 섬세한 안목 등 건축주 부부의 작업과 성향이 넉넉한 공간에 오브제처럼 담겨 있는 느낌이다. 거창한 수식이 없어도 충분히 가득 차 있고, 가득 차 있지만 형태와 재료와 디테일에서 잔잔하게 여백이 흐른다. 건축주 부부가 좋아하는 나무와 책을 갈고 닦는 공간, 그래서 수연목서(修研木書)다.
목공방과 갤러리 겸 카페가 각각 두 개의 동으로 분리된 채, 1층에서는 중정을 사이에 두고 2층에서는 브리지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 두 개 동 모두 2층 공간을 갖고 있지만 면적이 작고, 나머지 공간은 두 개 층 높이로 천장을 열어 공유한다. 작은 공간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과 높고 넉넉한 지층에서 다가가는 자연이 다르게 느껴지는 만큼 공간은 더욱 풍부해진다.
천장과 벽은 대나무 노출 콘크리트 공법으로 마감해 특유의 입체적 질감을 극대화하고 있는데, 거친 벽면 위로 나무 그림자가 드리우는 일상은 그 자체가 하나의 작품처럼 다가온다. 화장실, 계단참 등 일부에 가공 없이 사용된 적색 고벽돌이 노출 콘크리트의 질감 및 색감과 대비를 이루는 모습이나 간접조명이 노출 콘크리트의 질감을 더욱 강조하는 장면 등이 모두 극적이다.
비어 있는 내부 공간에서 시선을 끄는 또 하나의 오브제로 오픈 형으로 디자인된 계단을 꼽게 된다. 각 동별로 자리하는 2개의 계단은 서로 다르게 디자인되어 재료 및 형태 면에서 대비를 이룬다. 공방 계단은 흑색 철판을 측면으로 하는 일반적인 콘크리트 계단이고, 갤러리 계단은 벽돌로 계단참을 조성하고 철재 구조 위에 백색과 녹색의 대리석을 얹어 강조하고 있다.
적벽돌로 마감된 정면과 배면의 창들이 양쪽 산의 실시간 풍경을 액자 형태로 끌어들인다. 마치 갤러리 안에 전시된 살아 움직이는 사진 작품을 보는 듯하다. 유리 커튼월로 투명하게 처리된 건물 좌우측의 박공형 입면은 보다 운동감 있고 입체적으로 풍경을 받아 안는다. 선형으로 길게 뻗어 있는 길과 산과 하늘이 건물을 관통하여 흐르는 듯하여, 시골의 고즈넉하고 한가한 풍경과 감성이 집과 한 몸으로 어우러지는 모습이다. 박공지붕, 적벽돌의 외벽, 노출콘크리트의 내벽 위로 주변 풍광이 때때마다 다른 음영과 계절을 그려내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소박하게 비어 있는 집이 공간을 가득 채우는 비결이 여기에 있다.
작품명: 수연목서 (修硏木書) / 위치: 경기도 여주시 산북면 주어로 58 / 설계: 이충기 + 비앤드건축사사무소 / 설계담당: 이충기, 이상복 / 건축주: 김정옥 / 용도: 제 1종 근린생활시설 / 대지면적: 661m² / 건축면적: 256.7m²/ 연면적: 371.99m² / 건폐율: 38.84% / 용적률: 54.28% / 규모: 지상 2층 / 높이: 8.4m /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 구조설계: K1 구조 엔지니어링 / 기계, 전기설계: 주.덕수이엔지 / 시공: 주.시스홈종합건설 / 외부마감: 적벽돌, 징크, 로이삼중유리 / 내부마감: 노출콘크리트, 점토벽돌 / 설계기간: 2019.1.~4. / 시공기간: 2019.6.~12. / 사진: 김용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