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그루 집
경북 상주의 한 시골 마을. 드문드문 늘어선 농가들이 자아내는 한적한 풍경 속에 익숙한 듯 낯선 모습의 목조 주택 한 채가 자리한다. 과거의 구법으로 여겨지는 목구조가 최신 기술을 만나면 어떻게 진화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탐구해 본 ‘세 그루 집’이다.
주어진 대지는 채 300m2에 못 미치는 작은 땅으로 형태마저 제멋대로다. 그러나 그 비정형의 땅 모양은 그대로 집의 외곽선이 된다. 이 땅에 적합한 풍경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다.
다음으로는 이렇게 형성된 외곽선을 따라 반투명한 폴리카보네이트 골판을 덧댄 합판이 둘러싸여진다. 골판과 합판, 두 개의 켜를 지닌 외벽이 완성된 것이다.
밝은색 합판을 외장재로 사용한 덕분에 길에서 마주하는 모습은 무척 차분하다. 외벽에서 장식적 요소라고는 기껏해야 작은 창이 전부다. 오히려 눈길이 가는 부분은 지붕이다. 목재 외벽 위쪽에는 통유리벽이 약간 솟아올라 있는데, 그 너머로 복잡한 목재 구조물들이 언뜻언뜻 보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저 외벽 뒤에는 무언가 놀라운 것이 감추어져 있을 것만 같다.
기대감을 품은 채 문을 열면 사뭇 단조로웠던 외관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공간이 펼쳐진다. 탁 트인 백색 공간에는 거대한 세 그루의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몸통에서부터 갈라져 나온 수많은 가지는 얽히고설키면서 거대한 천장 구조체를 형성하고 있다. 밖에서는 결코 상상할 수 없었던 역동적인 장면이다.
건물의 기둥이기도 한 나무의 위치나 가지가 뻗어 나가는 방향 등은 컴퓨터 알고리즘을 통해 설정됐다. 철저한 분석을 통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낸 결과, 세 그루의 나무는 일그러진 육각형 모양의 지붕을 효과적으로 떠받치며 구조체의 역할을 수행해낸다. 이때 각각의 부재는 못으로 박는 대신 결구를 짜맞추는 방식으로 결합하여 재료가 가진 순수한 힘도 가감 없이 보여주고자 했다.
하중을 지탱하는 구조 역할은 오롯이 나무의 몫이고 벽체는 그저 영역을 형성할 뿐이다. 벽에는 개구부가 거의 없어, 빛은 지붕 아래의 유리 벽이나 벽 틈으로 새어 들어온다. 울창한 숲에서나 볼법한 모습이다. 의도적으로 혹은 결과적으로 내부에는 오직 공간과 사람만이 남게 된다.
지붕은 주변 농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많은 농촌 주택들은 평지붕 위에 샌드위치 패널로 만든 얇은 박공지붕을 덧씌워 물이 새는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데, ‘세 그루 집’의 지붕도 이와 비슷하다. 더불어 지붕의 마감재로는 아스팔트 슁글을 사용하여 저렴한 재료의 쓰임에 대한 대안도 제시하고자 했다.
‘세 그루 집’에서 기술은 과거의 목수를 대신한다. 나아가 사라진 것을 되살리고, 그것이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작품명: 세 그루 집 + 나무 시리즈 / 설계: 김재경 (김재경건축연구소, 한양대학교) / 설계담당: 허성범, 이예솔 (세 그루 집), 이예솔, 이영준, 이동원 (나무 시리즈), 이예솔, 곽숙란, 이경택, 허승욱 (초기 연구) / 위치: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영남제일로 417-5 / 용도: 단독주택 / 대지면적: 271m2 / 건축면적: 68.58m2 / 연면적: 85.52m2 / 규모: 2층: 16.94M2, 1층: 68.58m2 / 높이: 6.35M / 주차: 1대 / 건폐율: 25.30% / 용적률: 31.55% / 구조: 자작나무 합판 목구조 / 외부마감: 반투명 폴리카보네이트 골판, 스프러스 각재, 아라우코 합판, 로이삼중유리 시스템 창호, 아스팔트 슁글 (지붕) / 내부마감: 국내산 낙엽송 합판, 석고보드위 수성페인트, 락솔리드 바닥 코팅 / 구조설계: 김재경건축연구소 / 시공: 김재경, 허성범, 이예솔, 김민호, 신진호 (김재경건축연구소) + 남명희 / 기계설계: 김재경건축연구소 / 전기설계: 김재경건축연구소 / 설계기간: 2017. 08 ~2018. 03 / 시공기간: 2018. 04~ 2018. 08 / 공사비: 150,000,000 / 건축주: 최경숙 / 사진: Rohsp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