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문화진지
한국전쟁의 여파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던 1970년, 서울의 북쪽 경계인 도봉산 일대에 대전차방호시설이 들어섰다. 4층 규모의 건물 다섯 동으로 이루어진 이 시설은 대북 경계 강화 목적으로 지어진 군사 시설이지만, 동시에 주거 시설이기도 했다. 1층만 방호시설로 이용됐을 뿐, 나머지 층들은 방호시설임을 숨기기 위해 군인 아파트로 활용됐기 때문이다. 군사 시설과 주거 시설, 결코 공존할 수 없는 두 기능이 결합된 이 구조물은 아마도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빚어낸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대지는 동쪽으로 수락산과 중랑천을, 서쪽으로 도봉산을 면해 있다. 남쪽에는 2009년 개장한 식물원이 자리하며, 북쪽에는 2018년 동북권 체육공원이 조성되어 시민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이러한 대지로 접근하는 경로는 크게 두 가지다. 서쪽에 위치한 도봉산 지하철역이나 동쪽에 신설된 도로를 통하는 것이다. 최근 이 도로를 의정부까지 연장하는 공사가 진행됨에 따라 기존 건물의 동측 일부가 철거되기는 했으나, 접근성이 높아지는 만큼 시민 공간으로서의 가능성도 커지리라 기대할만하다.
방호시설은 가로 40m, 세로 14m 규모의 건물 다섯 개 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동은 ‘ㄷ’자형의 작전공간과 그 외의 지원공간을 갖춘 동일한 평면으로 구성되며, 동서방향으로 나란히 늘어선 이 건물들은 내부 통로를 통해 하나로 연결된다. 전체 길이 250m의 거대한 단일 건물이나 마찬가지다.
작업의 핵심은 ‘ㄷ’자형 공간 구조를 ‘ㅁ’자형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작전공간만 남긴 채 나머지 부분은 비워내고 그 대신 전면에 새 공간을 마련함으로써, 중정을 지닌 새로운 공간 구조를 구축하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형성되는 중정은 과거의 흔적과 현재의 이야기를 함께 담아내며 방문객들에게 이 시설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겨보게 한다. 남겨진 ‘ㄷ’자형의 공간에는 전시실이나 강의실이, 신축 공간에는 사무실과 관리실, 예술가들의 공방, 레스토랑을 비롯한 편의 시설이 배치된다. 기존 공간이 과거 군사 시설의 기억을 담고 있다면, 문화 시설로 조성되는 새 공간은 시민들이 만들어갈 미래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셈이다. 화장실, 기계실 등의 편의 시설과 관리 시설은 각 동 사이에 배치하여 부족한 공간을 확보했다.
휴식 공간은 지붕에도 조성된다. 지상층에서는 중앙 광장을 경계 삼아 건물의 영역이 두 개로 나뉘지만, 지붕 층에서는 모두 연결된다. 이러한 연속성은 공사 중 발견된 2동과 3동 사이의 지하연결로를 활용함으로써 내부 공간에서도 그대로 유지된다. 가장 동쪽에 위치한 5동 지붕에는 신설 도로의 보행로와 이어지는 계단, 내부에는 신설 도로 하부를 통해 중랑천으로 이어지는 지하 통로도 마련됐다. 결과적으로 동쪽의 중랑천부터 서쪽의 1동까지의 내외부 동선은 모두 연결된다. 5동 앞에는 20m 높이의 전망대도 신설됐다. 방문객들은 이곳에 올라 주변의 풍경을 즐기며 휴식을 취할 것이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지점, 남북의 공원과 동서의 자연을 연결하는 지점, 바로 그 시공간적 교차점에 위치한 평화문화진지가 그 시간적, 공간적 의미를 계속해서 더해가길 기대한다.
작품명: 평화문화진지 – 대전차방호시설 리모델링 / 위치: 서울시 도봉구 마들로 932 / 설계: 유종수, 김빈 – 코어건축사사무소 / 설계담당: 조아란, 강희라, 박윤정 / 구조설계: SDM구조기술사사무소 / 기계설계: 청림설비기술사사무소 / 전기설계: ㈜극동문화전기설계 / 시공: 씨엠글로벌건설㈜ / 건축주: 도봉구청 / 용도: 군사시설, 근린생활시설, 관광휴게시설 / 대지면적: 49,830m² / 건축면적: 1,871.55m² / 연면적: 1,875.12m² / 건폐율: 3.76% / 용적률: 3.76% / 규모: 지상 2층 / 높이: 20m / 주차: 11대 /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철골조 / 외부마감: 고열처리목재패널, 콘크리트폴리싱 / 내부마감: 콘크리트폴리싱, 석고보드위 도장 / 설계기간: 2015.10.15.~2016.11.23. / 시공기간: 2016.12.14.~2017.11.6. / 사진: 황효철, 이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