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는 건축에서도 외면할 수 없는 문제다. 과거 건축에게 부여된 가장 큰 임무가 주변 환경의 극복이었다면, 이제는 건축 활동이 주변에 미치는 영향을 감소시키는 것이 핵심적인 과제가 됐다. 지속 가능성이라는 단어와 건축의 조합은 더 이상 생소해 보이지 않는다. 이 같은 변화의 흐름에서, 우리는 아시아 건축가들에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기후와 풍토를 기반으로 곳곳에서 창의적인 해답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 건축가, 특히 베트남 건축가들을 다룬 ‘트로피컬 스페이스 H&P 아키텍츠’가 출간됐다. 이 책은 서울대 – 목천 강연으로 출판된 두 번째 작품집이기도 하다. 2015년 발족한 목천김정식문화재단은 2017년 스페인 건축가 라파엘 모네오를 처음으로 해외 건축가 초청 강연을 시작했다. 2018년부터는 대상을 바꾸어 국제적으로 덜 알려졌으나 한국과의 공감대 형성이 가능한 아시아 건축가들을 초청하고 있다. 첫 번째 작품집의 건축가로는 중국의 리우지아쿤이 선정됐다.
이번 책에서 소개하는 트로피컬 스페이스와 H&P 아키텍츠 역시 아열대 기후의 베트남에서 활동하는 젊은 건축가들이다. 이들은 서구 중심의 사고와 반대되는 건축 해법을 통해 기후 변화와 도시화에 대응한다는 점에서 더 흥미롭다. 백진은 이들의 작품을 “토포그래피, 기후, 삶의 패턴 사이의 관계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기반으로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트로피컬 스페이스 H&P 아키텍츠’는 전봉희의 베트남 역사와 기후, 건축에 대한 소개로 포문을 열어젖힌다. 이어 베트남에서 건축을 가르치고 있는 에이탄 피치만이 베트남 건축 전반과 책에서 소개할 신진 건축가들을 비교분석함으로써 본격적인 소개의 발판을 마련했다.
건축가들은 PART 1과 PART 2에서 각각 다루어진다. 백진과 서현이 크리틱에서 이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가치를 논한 뒤, 트로피컬 스페이스와 H&P 아키텍츠의 에세이와 프로젝트별 사진, 도면, 스케치 등이 이어지는 구조다.
토포그래피에 대한 인식과 대응을 기반으로 하는 트로피컬 스페이스의 작품은 터미테리 하우스(2014)와 테라코타 스튜디오(2016)를 포함해 총 네 개가 수록됐다. H&P 아키텍츠의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로 네 개가 소개됐는데, 브릭 케이브(2017)과 응오이 스페이스(2021)를 비롯한 작품에서는 그들이 기후 환경이라는 문제에 직진해 건축적으로 풀어내려는 태도가 엿보인다. 이 두 건축가 그룹은 비판적 지역주의를 통해 베트남의 역사적 층위를 세련되게 표현하며, 도시화와 기후 위기라는 주제가 교차하는 베트남의 현재를 반영한다. 아직 작품의 수가 많지 않은 점이 아쉽지만, 그만큼 한계 없는 그들의 미래가 궁금해진다.
한편, 베트남 건축가들의 고민과 실천은 지속가능성의 측면 외에도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같은 아시아 국가이자 건축에서 변방으로 여겨지는 한국도 우리만의 정체성을 탐구해 온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서현은 이들의 건축을 “외부에서 수입된 문화적 부채 의식이 없는 건축”이라 평한다. 우리 건축계가 생각해 볼 만한 대목이다. 닮은 듯 다른 한국과 베트남의 근대사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우리가 좇아온 것은 무엇인가? 이제는,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