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서 단독주택, 유유자적
비탈진 골목길을 따라 곧게 올라가 있는 집 앞마당에는 대모산 끝자락이 먼저 당도해 있다. 골목길부터 마중 나온 산자락의 푸른 기백이 안마당으로 이어지고, 살아 움직이는 액자처럼 집안까지 성큼 들어서 있다. 마치 산에서 내려온 나무들이 한 식구인 양 어우러져 함께 지내고 있는 모습에 어째서 ‘유유자적’이라 이름지었는가 이해하고도 남는다.
집은 유닛화 된 상자 세 개가 3개 층으로 적층된 모습을 하고 있다. 가족 구성원들 각자의 취향에 따라 개인이 원하는 공간이 달랐다는 데 그 이유가 있다. 구성원 각자의 요구에 맞춘 재료와 크기에 따라 사적 공간이 계획된 것이다. 즉 하나의 매스로 일체화되기 전 먼저 개인 침실을 중심으로 독립적 단위의 볼륨이 빚어졌고, 다음으로 1층 거실과 부엌 등의 공유공간이 계획되었다.
이미 만들어진 개별 볼륨들을 위로 자연스레 쌓아 올린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공간이 수직이 아닌 사선의 형태로 비스듬히 적층되어 있다는 점이다. 수십 년을 애지중지 키워 가족과 같은 나무의 영역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다. 나무가 계속해서 생장해 나갈 수 있도록 나무 높이를 고려해 상자들의 적층이 사선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일조권 등의 환경적 조건과 물리적 콘텍스트를 고려한 것은 물론이다. 덕분에 놓인 위치와 향이 조금씩 다른 만큼 각 유닛마다 자신만의 풍경을 갖게 된다.
각 볼륨들이 층마다 흩어져 있어서 공간의 단독성이 제대로 작동될 수밖에 없다. 동시에 골목길에서 시작되는 흐름이 내부의 지그재그형 계단을 통로 삼아 적층된 3개의 유닛을 서로 유기적인 관계로 연계하고 있다. 안으로는 공간이 구성원 각자의 개성을 인정하며 일상을 고무하고, 밖으로는 각 층의 볼륨들이 소나무의 자유로운 성장과 대응되도록 자리 잡은 것이다. 각 유닛을 힘 있게 지지해주는 외부의 기둥들은 마당에 새로운 공간을 창출해낸다. 오래도록 나이 들어오면서 유연하고 수려하게 휘어진 나무의 선과 원기둥의 수직적 에너지가 서로 대조되며 묘한 시적 긴장감이 만들어지는 것도 같다.
서울 수서동 주택가에 위치하는 집은 원래 오래된 벽돌집이었다. 소나무와 단풍나무 두 그루가 이미 가족 구성원이 되어 있는 옛집을 허물고 새 보금자리를 짓는 작업이었다. 공간의 외형은 바뀌었으나 나무와 산자락과 더불어 자연과 하나로 얽혀지는 일상의 정신은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공간을 따라 머무르기도 흐르기도 하면서 자연과 함께 써내려가는 삶의 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집안 곳곳에서 여전히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프로젝트명: 수서 467 단독주택 / 위치: 서울특별시 강남구 수서동 467-9 / 설계: 김동진(홍익대학교), ㈜ 로디자인 / 설계담당: 윤지혜, 윤유리 / 시공: 마루건설 / 구조설계: SDM 구조기술사사무소 / 기계전기설계: 성신설비, 극동전기 / 감리: 익성 종합건축사사무소, ㈜ 로디자인 / 용도: 단독주택 / 건축주: 최홍산 / 대지면적: 324㎡ / 건축면적: 184.85㎡ / 연면적: 244.87㎡ / 규모: 지상3층 / 구조: 철근콘크리트구조 / 외부 마감: 시멘트모노타일, 럭스틸, 스타코, 방킬라이 / 설계기간: 2016.7~2017.2 / 시공기간: 2017.3~12 / 사진: 신경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