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이채윤, 박정란 인턴기자 글 전효진 기자
지난 16일 개막한 ‘2021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이하 서울비엔날레)’가 온·오프라인에서 다채로운 전시와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순항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로 3회를 맞이한 서울비엔날레는 팬데믹 여파에 맞서 막을 올린 국제건축행사 중 하나로 개막 전부터 큰 관심을 모아왔다. 이번 주제는 ‘크로스 로드, 어떤 도시에 살 것인가’이다. 기후 변화, 산업 감소, 기술 발전 등 다방면에서 진행 중인 변화 혹은 위기 속에서, 미래 도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해 보자는 것. 평범하고 익숙했던 일상을 잃어버리게 된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 대안을 찾기 위해 수집한 전 세계 53개국, 112개 도시, 190명의 작가, 40개 대학, 17개 해외 정부와 공공기관의 사례들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세운상가, 서울 시내 3곳의 장소에서 6개의 전시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서울비엔날레의 메인 전시장인 DDP에서는 ‘주제전’, ‘도시전’, ‘글로벌 스튜디오’, 세 개의 전시가 열린다.
총감독 도미니크 페로Dominique Perrault가 큐레이팅한 ‘주제전’과 ‘도시전’은 별자리에서 착안한 아이디어로 기획된 전시다. 여러 별이 모여 별자리를 이루면 하나일 때 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존재를 인지시킬 수 있듯이, 세계 각국의 사례들을 ‘도시 회복’이라는 목표하에 모으고 공유함으로써 더 나은 도시의 미래를 그려보자는 의미다. ‘회복’의 시작은 교류와 소통임을 거듭 강조했던 도미니크 페로의 철학이 함축적으로 녹아있는 전시라 해도 좋을 듯하다.
한국 건축사무소 건축공방이 큐레이팅한 ‘글로벌 스튜디오’에서는 재난에 대처하기 위한 전 세계 40개 기관 학생들의 아이디어가 소개된다. 환경, 주택, 정치, 보건 등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위기 상황의 실체가 과거보다 훨씬 더 다양해진 만큼, 그 대안을 찾는 과정은 물리적인 피난처뿐 아니라 건축의 정치·사회적 의미까지도 함께 고민해보게 한다.
주제전, ‘건축 × 인프라’
인프라가 잘 갖춰진 도시는 좋은 도시일까? 인프라의 정의가 교통, 통신, 전기, 수도, 가스, 상·하수도, 인터넷, 도로, 철도, 학교, 병원 등, 생활을 영위하고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산업·생활기반시설을 지칭한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당연하다 못해 다소 황당한 질문이다.
그렇다면 하나 더 질문해 보자. 기능에 충실한 인프라가 좋은 인프라인가? 이 또한 물론이다. 정해진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설물이니 ‘기능’과 ‘효율’에 초점을 맞추는 건 당연하다. 과거에는 이러한 기능 위주의 고효율 인프라가 도시를 움직이게 했던 것도 사실이다.
변수는 시대의 변화다. 인프라도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활용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지금까지의 인프라는 순전히 본래의 기능에만 초점을 맞춰 만들어진, 융통성 제로의 건축이나 다름없다. 그렇다고 이 많은 인프라를 모두 폐기할 수도 없는 일.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가 그 가능성을 열어줬다. 사람들이 떠나버린 경기장과 넓은 주차장에 선별 진료소나 백신 접종센터가 신속하게 유치되었던 게 대표적인 예다.
이렇게 인프라를 도시의 새로운 자원으로 전환할 방법은 무엇일까? 그리고 건축가는 그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DDP 디자인박물관 2층 전시장에 마련된 ‘주제전’에서는 ‘건축×인프라’라는 주제하에, 이러한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29개의 작품을 소개한다.
전시장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거대한 타워가 앞을 가로막는다. 전시장내에서 가장 높은 데다가 색깔마저 검은색이라 위협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는 이 작품은 ‘산업혁명 기념관(T28)’이다. 산업혁명은 기술적 진보를 이끌며 근대화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지만, 동시에 전 지구적 생태 위기를 불러왔다. 전시장 입구에 자리한 기념관은 이러한 후기 근대의 눈부신 업적을 기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까지의 환경 파괴적인 생산과 소비의 종말을 선언한다. 기념관을 이루는 주 재료는 코르크 블록이다. ‘형태는 생명주기를 따른다’를 모토로, 순수 식물 기반성 재료인 코르크 블록을 이용해 자연 친화적 기념비를 선보인 것. 각 블록은 접착제 없이 조립됐기 때문에 비엔날레가 끝나면 해체하여 다른 건물을 만드는 데 사용할 수 있다. 언젠가 생명 주기를 다하게 될지라도, 자연으로 돌아가서 분해되고 다시 새로운 생물의 성장을 일으키는 양분이 됨으로써, 건축과 자연의 선순환적 연결고리를 형성한다.
‘생태적 건축’에 대한 고민과 실험은 전시장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돌의 피부(T9)’는 건물과 자원 사이의 오랜 분리에 대응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공간을 구축하는 실험이다. 얇은 천연 라텍스를 산의 표면에 입힌 뒤 굳은 라텍스를 벗겨내, 실제 산의 질감과 형태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
그런가 하면 ‘시카고: 지열을 통한 냉난방 개입(T03)’은 도시의 회복을 위해 현존하는 지하 환경을 에너지 공급을 위한 구조 시스템으로 탈바꿈 시킨다. 도시 지하에 위치한 280km의 터널과 기타 구조물은 혁신적 기술에 힘입어, 지속적으로 지하와 열을 교환하며 에너지를 생산 및 공급하며, 도시 회복에 기여한다. 공상적이지만 언젠가는 충분히 실현될만한 가능성 있는 아이디어다.
비슷한 개념의 작품으로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무렵 프랑스에 지어졌던 임시 거처인 ‘6X9 디마운터블 하우스(T07)’가 있다. 건축가 장 푸르베가 설계한 이 집은 조립식 주택으로, 가구와 건물을 모두 손쉽게 분해하고, 이동 및 조정이 가능하다. 전시장에는 이 집의 포털 프레임, 릿지빔, 파사드 패널 등이 전시된다. 이러한 요소들은 장 프루베가 고안한 독창적이고도 심플한 이 집의 구조를 여실히 보여주며, 건축가의 아이디어로 위기 상황에 적용 가능한 독창적 공간이 탄생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 밖에도 창, 문, 지붕 등 스위스 전통 건축의 여러 요소들로 커다란 장난감 키트를 만든 ‘스위스다움 만들기(T25)’, 식량 생산의 필수 요소임에도 종종 논의에서는 제외됐던 ‘씨앗’에 주목한 ‘씨앗의 집(T11)’ 등 총 29개의 작품과, 전시장 중앙 이벤트 공간에서 상시 상영되는 다양한 관련 영상은, 우리 삶의 배경이 되는 다양한 인프라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하며 도시의 회복력, 지속가능성, 심미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새로운 도전의 장이 되고 있다.
도시전, ‘다섯 가지 크로스로드’
주제전 관람을 마치고 출입구로 나서면 주제전이 시작했던 바로 그 자리에서 이번엔 ‘도시전’이 시작된다. 2층부터 지하 2층까지 이어진 복도 겸 램프가 곧, 도시전의 전시장이다.
도시전의 주제는 ‘다섯 가지 크로스로드’. 주제전이 ‘인프라’라는 키워드로 도시의 회복 가능성을 탐색했다면, 도시전에서는 ‘크로스로드’라 칭하는 다섯 가지 소주제를 통해 ‘어떤 도시에 살 것인가’라는 비엔날레의 메인 주제를 한층 구체적으로 탐구한다. 참여 작가와 작품 수도 주제전에 비해 월등하고, 건축가, 도시계획가, 인문학자, 과학자, 이론가, 예술가, 학생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의 사람들이 참여한 만큼 작품들이 다루는 내용도 훨씬 다양하다. 때문에 자칫 산만한 구성이 될 수도 있었는데, 그 대안으로 제시된 게 다섯 개의 소주제다. 도미니크 페로가 도시전 전시 모티브로 삼은 별과 별자리의 관계처럼, 백여 개에 달하는 개별 사례들은 다섯 가지 카테고리로 묶임으로써 시너지를 발하며, 지속가능한 도시와 우리가 살아갈 도시의 미래상을 제시한다.
지상×지하
첫 번째 소주제는 ‘지상과 지하’로, 지상은 일상적인 공간, 지하는 도시를 형성하는 구조를 말한다. 전자가 익숙하고 낯익은 세계라면, 후자는 평상시에는 쉽게 인지하지 못하는 낯선 세계다. 이 챕터에서는 도시계획에 관련된 사례들을 통해 익숙함과 낯섦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아 나선다.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서있는 도시 모형이 원형 테이블 위에 거꾸로 매달려 있고 그 아래는 커다란 볼록 거울이 놓여있다. ‘도시의 아래: 하천들(C06)’이라는 작품이다. 언뜻 모형만 봐서는 평범한 도시 모형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볼록 거울에 반사된 이미지를 보면 모형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요소가 눈에 띈다. 건물들보다 더 오래전부터 도시에 존재했지만, 건물에 밀려 그 존재감을 잃게된 ‘수로’와 ‘하천’이다. 작품은 숨겨진 수로들에 빛을 비추며, 인간에 의해 변형된 풍경, 특히 개울과 하천의 존재를 각인시킨다. 더불어 볼록 거울 주변에 배치한 다양한 드로잉을 통해 도시와 하천의 관계 회복 방법을 다방면으로 탐색한다.
가장 익숙한 지하 공간인 ‘지하철’을 다룬 작품도 있다. 오사카 대학교의 새 캠퍼스와 연결된 지하철역을 소개한 ‘일시성: 지하철 역(C08)’다. 프로젝트의 핵심은 위와 아래, 남과 북, 자연 경관과 인공 경관을 연결하는 일련의 층으로, 7개의 층으로 만들어진 지붕은 산과 도시를 향한 전망을 생성하고, 빛과 그늘, 자연 환기를 제공하며, 지하 아트리움과 에스컬레이터를 덮음으로써 새로운 공공장소를 형성한다. 도시 아래에도 얼마든지 다양한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공공공간이 형성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연결된 지붕 위로 보이는 녹색의 공간들, 그러나 흔히 보이는 옥상정원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지붕 위의 삶을 제안한 ‘구름 속의 세계(C09)’는 지붕에 목재 플랫폼을 설치하여 내 집 옥상으로만 제한되어 있던 옥상정원을 옆 집, 그 옆집으로까지 연결시킨다. 이렇게 확장된 녹색 개방공간은 열섬현상 완화, 도시 농업의 생산성 향상 등의 실질적인 대안이 됨은 물론, 이웃과의 활발한 소통을 가능케하는 공동체성 회복의 공간이기도 하다.
유산×현대
두번째 소주제 ‘유산과 현대’에서는 최근 건축계의 최대 이슈 중 하나인 과거와 현재의 조화에 주목하여, 과거의 것들을 어디까지 어떤 방식으로 보존할지, 더불어 현대 건축물이 영민하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도시 공간에 포함되려면 어떤 가치를 지녀야 하는지 살펴본다.
‘자연적 유물과 인공적 목격자(C25)’는 보존해야 할 유산으로 자연을 꼽으며, 스위스 사례를 예로 들어 지형의 위기와 건축 환경에 미치는 그 잠재적 영향을 밝힌다. 스위스 알프스 지역에 있는 가장 오래된 빙하 중 하나인 론 빙하는 기후 변화로 인해 100년 후에는 사라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한편, 론 빙하 후미에 위치한 벨베데레 호텔은 1882년부터 탐험가들에게 가장 유명한 목적지였으나 빙하가 감소하면서 2015년에 문을 닫았다. 전시 작품은 일정 간격으로 나열된 반사판 양쪽에 과거와 현재의 빙하 모형을 배치하여 이러한 상황을 은유적으로 설명한다. 양쪽 빙하는 마치 데칼코마니같이 놓여있지만, 한쪽에서는 빙하가 녹아 물이 흐르고 있다. 그렇게 결국 100년 후 사라질 론 빙하는 인류세 시대의 새로운 유물이 되고, 벨베데레 호텔은 문을 닫은 동안 이 풍경 변화의 목격자가 될 것임을 얘기하며, 자연과 건축의 한데 엮여 있는 관계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대다수의 작품들과 달리 두꺼운 벽체로 이루어진 육중한 설치물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벽과 도시(C31)’라는 이름의 이 작품으로, 서로 다른 세계 사이, 그리고 전통과 현대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하는 ‘벽’을 탐구한다. 둥근 벽 중앙에는 과거 인도에서 동네 주민들의 소통을 위해 필수였던, 그러나 지금은 점차 그 기능을 잃어가고 있는, 야외극장의 모형이 놓여있다. 또한, 벽면에는 인도 아마다바드 지역을 대상으로 벽의 다양한 조건을 분석한 자료들을 전시하여, 도시의 사회적 지속가능성을 위한 벽의 형태, 한계, 용도, 영향을 보여주고, ‘벽’의 건축적 도시 장치로서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공예×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생산 방식은 진화했고 디지털을 접목한 건물들로 인해 현대 도시의 잠재력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과거의 공간과 전통적인 생산 방식, 전통 기술의 지혜를 배제해서는 안될 일. 세 번째 섹션에서는 ‘공예와 디지털’을 주제로, 전통적인 수공예적 기술과 디지털 기술은 어떤 측면에서 어떤 방식으로 공존해야 하는지 살펴본다.
컬러풀한 색감의 로프가 감겨 있는 작은 언덕이 눈길을 사로 잡는다. 수학적 알고리즘에서 영감을 얻은 기하학적 구조를 자연 환경과 조화롭게 엮어 낸 작품 ‘증강묘사(C45)’다. 증강현실 기술까지 동원한 이 작품은 다분히 디지털에 기반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매우 아날로그적 경험을 선사한다. 마티스의 작품을 연상케하는 색색의 로프는 증강현실 속에서 광활한 자연 속에 퍼져있는데, 전시장에는 그 설치물의 일부를 1:1 크기로 재현하고 실제로 그 위에 앉거나 걷게 함으로써 유형적인 경험을 제공하고, 자연과 기술이 조화를 이루는 미학적 측면을 기념한다.
폐기물을 가치있게 재사용 한다는 것은 기술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폐기물 골판지 거푸집 작업(C48)’은 디지털 기반 설계 도구를 사용하여 저비용, 저영향 거푸집을 만드는 실험 과정과 그 결과물을 보여준다. 거푸집은 보통 가볍고 재사용이가능한 나무가 쓰이지만, 이 실험에서 쓰인 재료는 박스지다. 매개변수 설계 도구로 종이접기와도 같은 방식으로 판지 거푸집을 제작하고, 방수 처리를 한 뒤, 콘크리트 주조를 위해 조립된다. 만드는 방식도 간편할뿐더러, 주 재료가 종이므로 한 프로젝트가 끝나면 또 다른 용도로 활용할 수도 있다. 건축에서 사용되는 엄청난 폐기물의 일부가 기술에 힘입어 재사용되어, 궁극적으로는 지속가능한 도시에 기여함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자연×인공
현대 도시에서 자연은 시민들에게 편안한 쉼터를 제공하고 도시에 생동감을 더해주는, 도시 환경의 중요한 요소다. 때문에 인류에게는 유한한 자연을 보존하고 관리해야 할 책임이 따르는 것. 네 번째 크로스로드 ‘자연과 인공’에서는 도시 건축을 지리학적 분야로까지 확장해 살펴보면서, 자연과 도시 건축의 조화와 그 중요성을 얘기한다.
‘발코니는 새로운 정원(C55)’은 대도시 환경에서 대안적 의미의 자연 공간을 제시한 작품이다. 작가가 주목한 공간은 ‘아파트 발코니’로, 발코니 정원은 자연을 도시로 끌어오겠다는 거창한 의도 없이, 우리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자연 공간이다. 그러나 그렇게 형성된 발코니 정원은 도심 속 공원은 물론 인위적인 자연 정원들과 비교해도 그 면적과 양이 훨씬 더 많다. 작품은 이렇듯 알게 모르게 대도시의 자연 형태를 재구성하고 있는 발코니의 존재를 인식케 함으로써, 자연과 인공의 모호한 경계와 공존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안전×위험
오늘날 우리는 세계 각지에서 발생하는 여러 예상치 못한 위험에 반응하면서 그 위험에 적응해가고 있다. 또한 그러한 위험을 겪을수록, 안전한 도시의 중요성을 더욱 절감하게 된다. 마지막 섹션에서는 안전한 도시와 그 역할, 건축과 도시 계획의 역량에 여러 질문들을 던진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을 위협하는 또 하나의 위험은 ‘소외’다. 소외현상을 다룬 ‘그레이 매터 베르겐(C62)’은 음식 저장을 위한 노르웨이 전통 건축물 ‘스타부르Stabbur‘에서 영감을 받아, 노인들의 삶을 기록하고 저장하는 프로젝트다. 노인들의 삶이 기록된 저장고를 통해 활동과 생산성이 젊은이들의 전유물이라는 통념에 반대하고, 노인들을 고립과 수동성, 의존성에 빠뜨리는 현 사회를 비판하며, 나아가 생산적인 도시란 세대 간의 안전과 자유를 제공할 수 있는 도시임을 주장한다.
글로벌 스튜디오, ‘피난처’
DDP에서 열리는 세 번째 전시는 전 세계 40개 건축대학이 참여한 ‘글로벌 스튜디오’다. 주제는 ‘피난처’로, 감염병, 기후 변화, 환경 파괴, 난민 등 넓은 범주의 재난이 연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주변 위협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공간은 어떤 모습인지를 탐구한다. 뿐만 아니라 ‘재난에 대처하기 위해 건축가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를 물으며, 일차원적 피난처로서의 기능을 넘어, 인류가 겪고 있는 재난에 대응하는 다양한 방식들을 제안한다.
전시는 40개 대학의 제안 중, 지난 1월 공모를 통해 선정된 8개국(대한민국, 홍콩, 터키, 스위스, 스페인, 호주, 칠레, 일본) 8개 대학의 작품들로 구성된다. 가로세로 4m, 높이는 최대 6m에 이르는 이 파빌리온들은, 도시전의 마지막 소주제인 ‘안전×위험’ 섹션으로 둘러싸여 있다. ‘안전과 위험’에서 한발 더 나아가 구체적인 설치물을 제시함으로써, 관객들이 직접 그 공간을 경험하며 재난과 피난처라는 주제를 동시에 생각해 보게 한 구성이다. 또한, 전시장에는 대형 스크린도 두 개나 설치되어, 강연, 인터뷰, 토론 등 이번 전시에 대한 총 61개의 다양한 영상이 상시 흘러나온다.
전시를 기획한 건축공방은 “도시 회복력이라는 큰 주제 안에서 다양하면서도 캐주얼한 시각을 제공하는 게 전시의 목표였다”며, “팬데믹으로 인해 참가자들의 한국 방문이 어려웠지만, 목업 영상을 공유하고 온라인으로 토론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을 이어갔다”고 전시 개최까지의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28개의 검은색 회전문으로 이루어진 파빌리온이 눈길을 사로 잡는다.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슈로 떠오른 난민 문제를 다룬 작품, ‘난민 쉼터 마련’이다. 난민 쉼터를 문자 그대로 설계하기 보다는 개념적 차원에서 접근한다.
28개의 문에는 전 세계 문화를 의미하는 다양한 패턴과 장식이 새겨져 있다. 그러나 회전문으로 들어가면 난민과 내국인 사이에 아무 구별이 없다. 벽이나 경계도 존재하지 않으며 모두가 동등하다. 쉼터는 이러한 문을 매개체로 중립적인 공간을 형성하며, 우리 앞에 놓인 난민 문제를 진지하게 성찰하고 대면하게 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피난처의 하나로, 대도시에 적용 가능한 비상 주거를 제시한다. ‘짜임’이라는 파빌리온의 이름에서 유추 가능하듯, 이 공간의 핵심은 직조와 뜨개질이다. 직조와 뜨게질을 통해 명상을 제공하여 일상의 혼돈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개념이다. 건설용 비계 유닛을 기본 구조로 사용하되 입면은 직조된 그물망으로 둘러싸인 이 촉각 공간은, 즉각적인 경험으로 복잡한 도시인들의 삶 속에 작은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다.
제3회 2021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는 오는 10월 31일까지 계속된다.
다음 기사에서는 서울도시건축전시관에서 열리는 ‘게스트시티전’과 ‘서울전’, 세운상가 일대에서 진행되는 ‘현장 프로젝트’를 취재 및 소개 할 예정이다. 사진 / 이채윤 인턴기자, 박정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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