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대학교 제5생활관
이로재 건축사사무소 | Iroje architects&planners
12층 높이의 암갈색 벽돌 벽이 길을 따라 완만한 곡률을 만들어내고 있다. 높고 기다랗게 쌓아올려진 견고한 성처럼 다가온다. 캠퍼스 남쪽 ‘동부로’에서 바라보이는 모습에서 수도원을 떠올리게 된다. 속을 알 길 없는 형태가 세상으로부터 스스로 격리되어 학문에만 몰두하고 있음을 몸소 이야기하는 것 같다.
서쪽에 자리하고 있는 네 개의 기숙사와 다르게 ‘전인교육시스템’을 도입한 신개념 기숙사다. 학과 수업을 방과 후 비교과 활동과 연계하여 심화시키는 프로그램이 담겨지고, 먹고 자고 교제하는 소소한 일상 가운데 소통, 융복합능력, 문화적 다양성, 리더십 등을 배워나가는 공간을 마련하는 프로젝트다. 수도원의 수도사들처럼 각자 살던 기존 세상과 거리를 두는 일상 자체가 배움과 학문의 연장이 되도록 하는 것, 공간이 감당하는 사명은 그것이다. 설계 개념을 ‘수도원’에서 찾고 ‘대학 수도원’이라 명명한 것은 그런 배경에서다.
산 하나를 통째로 깎아 만든 캠퍼스의 중앙을 능선 하나가 가로지르고 있어 동서가 분절되어 있다. 서쪽이 먼저 개발되면서 새로운 건물이 집중적으로 지어졌고, 남동쪽은 기존 교사들로만 구성되어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있다. 대신 손 타지 않은 오래된 수목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는 점, 경사지형이라는 점은 풍부한 공간감을 갖춘 새로운 형식의 건축을 기대해 볼 만했을 것이다.
실제로 건물은 방향과 경사 정도에 따라 다른 표정을 한다. 동부로에서 보이는 모습이 세상을 등진 수도원 같은 것에 비해 캠퍼스 정문에서 마주하는 풍경은 사뭇 다르다. 건물이 가파른 경사지에 걸터앉으면서 거대한 위세가 4개 층 안팎의 높이로 낮아져 있다. 12층 높이의 성이 주는 위화감이 사라지고 여느 캠퍼스 건물처럼 주변과 어우러진다.
건물은 주요 도로를 따라 남북으로 길고 부드러운 곡면을 그려내고 있고, 그곳에서 가지를 뻗듯 수직으로 매스들을 뻗어내고 있다. 뻗어 나온 매스들은 경사지를 동서로 나누며 사이 공간과 수직을 이루는 지점 등에 안뜰, 건물로 둘러싸인 광장, 광장형 계단 등의 공유 공간들을 형성하고 있다. 캠퍼스 내의 무수한 발길들이 날마다 이 장소들을 오가며 역동적이고 활기 넘치는 풍경을 만들어낸다.
애초 계획대로 경사진 땅을 무성하게 채우고 있던 수목들 사이에 건물과 공유 공간이 조심스럽게 배치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학교 측에서 공사를 위해 수목을 모두 베어내면서 숲이 소멸된 게 안타깝다. 새로 심은 나무가 숲을 이루려면 아주 오래 기다려야 하지만, 학생들의 삶이 쌓이고 수목이 성장해 가는 모습이 함께 더해져 가는 과정 자체도 뜻 깊을 것 같다. 건축가가 그리던 풍경에 도달하기까지, 모든 시간과 과정의 풍경들은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라는 의미 부여를 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작품명: 대전대학교 제5생활관 / 위치: 대전광역시 동구 대학로 62(대전대학교) / 건축가: 승효상 – 이로재 건축사사무소 / 프로젝트팀: 이동수, 김승희 / 구조설계: 더나은구조 / 기계: DE테크 / 전기: 대경전기 / 프로그램: 기숙사, 다목적홀, 세미나실, 스터디라운지, 커뮤니티라운지, 헬스 및 요가실 / 건축면적: 3,913m² / 연면적: 14,084.5m² / 높이: 45.6m / 규모: 지하 1층, 지상 11층 /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 외부마감재: 치장벽돌, 알루미늄시트, 노출콘크리트, THK24 로이복층유리 / 설계기간: 2013.11~2015.2 / 시공기간: 2015.5~2017.10 / 사진: 김종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