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보건소
에디터 현유미 부장 글 김소원 디자인 한정민
자료제공 경영위치건축사사무소
집적된 시간과 공간의 재구축
도시 공간은 집적의 역사이다. 세월을 견디면서 그 땅 위로 수많은 삶과 흔적이 집적되고, 또 사라진다. 새 문경시 보건소 자리는 과거 ‘점촌시’ 행정구역의 시청 부지였고, 현재는 도심에서 유일한 공용주차장이다. 그 자리에 공공보건소를 세우는 것이 시의 의지였다면, 도심 주차장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인근 지역주민의 바람이었다. 이러한 집적된 역사와 각기 다른 입장에서의 희망은 복합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냈다.
시에서 건축가에게 처음 요구한 것은 지하 1, 2층 주차장과 지상 보건소였다. 그러나 실상 20억 넘게 예산이 부족한 상황인 데다, 연약한 지반에 지하 2층 깊이로 땅을 파는 일은 무리였고 형편없는 주차대수 효율과 앞으로의 유지비까지 생각하면 새로운 대안이 필요했다. 이에 지상을 공용주차장으로 이용하되 보건소를 지상에서 들어 올리는 방법을 제안했고, 결과적으로 집적된 시간의 도시가 입체적 건축의 형태로 구축되면서 공용주차장을 다양한 옥외 이벤트 공간으로도 활용할 수 있었다. 예산 또한 절감했다.
구축된 질서와 중합된 물질의 이미지
도심 가로와 연결되는 경사면을 따라 보건소로 진입하게 된다. 일부 구간은 계단이지만, 폭과 각도가 달라지며 도시 상황과 건축 장치가 의도적으로 또는 우연히 조우한다. 건물은 3.3m 그리드가 반복되는 단순한 장방형이지만, 동시에 콘크리트 박스와 기둥 구조 그리고 특별한 기능과 재료가 중첩되면서 섬세한 덩어리를 이룬다.
일정한 간격의 기둥이 떠받친 콘크리트 박스는 지상층 이벤트와 입체적으로 구분된 보건소 프로그램에 대한 은유이자, 도심 공공시설물로서의 표현이다. 마지막 구역에는 기둥 대신 캔틸레버로 처리하여 ‘들려 있음’을 분명히 드러내는 한편, 노출콘크리트 마구리벽에 내부 통로와 구조 체계를 암시하면서 주변 상황이 각기 다른 양쪽 마구리를 다르게 처리하여 구조와 기능, 도시 맥락에 따라 섬세하게 조정했다. 홍송 루버는 동서쪽 햇빛을 조절하고, 복잡한 개구부들을 통일하는 역할로, 멀리서 보면 건물의 인상을 만들고 가까이에서는 섬세한 스케일과 텍스처로 인식된다. 주차장 레벨에는 일정한 크기의 판벽들이 서 있는데, 이는 ‘문경새재’를 초현실주의 조각처럼 콜라주한 것이다. 이것은 물질성을 넘어 지역성을 담는다.
프로그램과 생성문법
보건소에 들어서자마자 만나는 대기 공간은 상층부까지 열려 있어, 진료실과 물리치료실 그리고 위층 건강검진부가 한눈에 들어온다. 보건소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통합되는 중심 공간인 셈이다. 여기서 구조의 그리드 질서에 도시에서 끌어들인 사선의 그리드가 개입된다. 이는 계단이라는 장치로 진료지원부를 연결한다. 대기 공간은 반대편 데크로 이어지면서, 가로에서부터 연속된 도시 공간이 뒤뜰을 만나 다시 확장된다. 각 층에도 내외부를 연결하는 공간을 두었다. 발코니나 옥상정원은 내부와 외부의 ‘사이’라는 개념적인 매개일 뿐 아니라 온도와 바람과 빛, 일과 일상의 경계로, 미래 프로그램의 변화를 담는 공간이 된다.
위층에는 건강검진부를 배치하여, 검진과 관련한 원스톱 서비스가 이루어지도록 배려했다. 같은 층 사무공간은 추후 진료지원 기능으로의 변화에 대응하도록 그에 적합한 개구부와 간막이, 설비 체계를 고안했다. 시멘트 블록 판벽과 유리 개구부의 반복은 가변적 적응을 암시한다. 최상층 다목적실은 성인병 교육, 각종 집회가 열리는 곳으로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기대되는 곳이다. 이곳에서 역시 옥상정원을 연결해 증축 가능성을 고려했다. 각 실은 크기나 용도의 변화에 쉽게 적응하도록 3.3m 모듈로 구획했고, 온열치료실이나 엑스레이실 등 특별한 처리가 필요한 영역은 기능뿐만 아니라 형태나 재료에서도 ‘다름’이 읽히도록 설계했다.
이곳에 만들어진 공간과 형태는 건축적인 기호가 아니라, 다양함과 질서가 공존하는 ‘어떤 체계’에 대한 철학적인 신념이다. 그리고 집적된 시간과 소비되는 공간으로 채워져 가는 도시 상황에 대응하는 방식이자, 확정성과 불확정성이 공존하는 프로그램에 필요한 건축적 생성문법이다. 즉, 이 시대의 가치와 도시의 문맥, 그리고 프로그램 조건에서 찾은 건축가의 해답이다.
작품명: 문경보건소 / 위치: 경북 문경시 점촌동 232 / 설계: 김승회, 강원필 / 설계팀: 조정구, 조항만, 정화택 / 모형: 이철우, 김준수 / 시공: 주.세원건설 / 전기설계: 새한설계_조재금 / 기계설계: 기한엔지니어링_김규완 / 용도: 의료시설 / 대지면적: 3,713m² / 건축면적: 1,063m² / 연면적: 1,979m² / 외부마감: 노출콘크리트, 문경석, 홍송, 마천석, 수성페인트 / 내부마감: 석고보드 위 페인트, 오크 패널링, 시멘트블록, 문경석 / 완공: 1999 / 사진: 강일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