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 현유미 부장 글 이희준 디자인 한정민
자료제공 SATHY + 매스스터디스 (별도표기외)
김중업의 주한 프랑스 대사관(이하 프랑스 대사관)이 프랑스의 사티SATHY (대표 윤태훈)와 한국의 매스스터디스Mass Studies (대표 조민석)의 설계로 증·개축되어 지난 4월 15일 재개관했다. 김중업의 원안이 1959년 공모전부터 1961년 준공까지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세 명의 대통령을 거친 것과 마찬가지로, 두 사무소의 증·개축도 2015년부터 2023년까지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세 명의 대통령을 거쳤다.
1959년 봄, 로제 샹바르Roger Chambard 주한 프랑스 대사는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가 추천한 김중업에게 프랑스 대사관 현상설계 참여를 부탁했다. 프랑스 정부는 일곱 명의 프랑스 건축가와 김중업, 총 8명의 건축가에게 안을 의뢰했다. 이는 여러 사람에게 비공식적으로 계획안을 받았던 비공식적인 공모전으로 추정된다. 당시 김중업은 신공덕동 소재 원자력 발전소 관련 업무차 미국 출장이 계획되어 있었다. 출국 전 대지를 가볍게 살펴본 후 미국의 뉴욕 브로드웨이의 한 호텔에서 첫 스케치를 하였고, 귀국 후 작업을 이어갔다.주1 김중업의 안은 같은 해 12월 프랑스 초대 문화부 장관 앙드레 말로André Malraux에 의해 선정되었고, 1960년 착공되었다.주2 적은 예산으로 인해 김중업이 자비를 들여 공사를 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1961년 봄 준공되었다. 영화감독 이형표의 1961년 작 ‘서울의 지붕 밑’에서 당시 대사 업무동의 실제 공사 모습과 그 배경에 보이는 관저의 골조를 확인할 수 있다.
최초의 프랑스 대사관은 크게 관저, 대사 업무동, 영사관, 영사 숙소, 그리고 정문으로 나뉜다. 관저는 주한 프랑스 대사와 가족이 거주하는 동이다. 남측에는 연못이, 옥상에는 보 사이 공간을 이용한 수영장이 있다. ‘+’ 모양의 단면을 가진, 위로 올라갈수록 두께가 줄어들어 지붕과 가볍게 만나는 관저의 기둥, 그것이 이루는 열주, 그리고 처마가 들린 형태의 지붕은 관저를 대표하는 건축 요소다. 관저는 남측의 다리를 통해 대사 업무동으로 곧바로 연결된다. 대사가 업무를 보는 대사 업무동은 2층에 대사 집무실, 1층에 필로티가 위치한다. 이 필로티와 네 개의 기둥이 받치는 네 꼭짓점이 들린 곡면 형태의 지붕이 특징적이다. 대사 업무동의 필로티에서 동측으로 곧바로 연결되는 영사관은 대사관 직원이 근무하는 동이다. 영사관은 김중업이 디자인한 상형문자 형태의 난간과 윤명로, 김종학의 모자이크 벽화가 특징적이다. 정문은 대사관 단지에 들어오면 정면으로 대사 업무동이 보이는 위치에 있다. 영사 숙소는 정문 서측에 위치한다.
프랑스 대사관은 준공 직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 건축의 신화였다. 관저의 지붕과 열주의 특징적인 조형이 진해 해군 공관 등 이후 김중업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하지만 신화의 주인공을 하나만 꼽는다면 대사 업무동 지붕의 조형이었다. 외부인의 출입이 어려운 대사관의 특성, 그리고 원작자의 의도와 무관한 개축으로 인해 최초 모습을 오랜 시간 잃었다는 전사는 신화로서의 프랑스 대사관의 입지를 강화했다. 이에 따라 60년대 매체의 평가는 찬사가 주를 이루었고, 비판은 90년대에 이르기까지 금기시되었다.
프랑스 대사관에 대한 본격적인 건축 비평은 김중업 서거 후 90년대에 이르러서야 시작되었다. 많은 건축가와 학자가 이 건축물을 한국 현대 건축의 원점으로 평가한다. 김중업 본인도 프랑스 대사관이 자기 작품 세계의 길잡이 중 하나이며, 이 작품을 통해 김중업 건축의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고 밝혔다.주3 반대로 날 선 비판도 있었다. 박용숙이 1974년 발표한 글 ‘한국현대건축의 미학’이 시초로 생각되나, 건축물 자체보다 김중업의 배경이나 당대의 주류 담론에 치중하여 글을 전개했다는 점이 아쉽다.주4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는 한, 근대건축이 그리던 기술의 신화와 고뇌가 없이 수입된 프랑스의 엘레강스와 한국적 정취의 융합이라는 레벨에서 정지하고 있다”고 주장한 김광현은 대표적인 비판자다.주5 이런 찬반양론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대사관이 우리나라 현대 건축뿐만 아니라 현대 건축에서의 한국성 제안의 시발점, 그리고 김중업의 최고작이라는 것이 널리 동의되는 공감대다.
프랑스 대사관에 대한 긍정적 평가의 가장 중요한 논거는 한국 건축과 서양 건축의 영향이 적절히 조화된 건축물이라는 점이다. 김중업은 한국의 미가 어느 부분에 구현된 것인지에 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다만 그는 동서양 모두의 영향을 자신의 건축 일반에 적용하고자 했다고 기록했다.주6
프랑스 대사관이 김중업의 첫 노출콘크리트 작품이라는 점과 지붕 조형의 과감함은 르코르뷔지에가 남긴 다수의 노출 콘크리트 건물, 그리고 롱샹 성당Colline Notre Dame du Haut으로 대표되는 르코르뷔지에의 감각적인 조형과 상통한다는 점에서 르코르뷔지에의 영향이 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건물을 기슭에 배치하는 한국 전통 건축 방식과는 달리 건물을 언덕 꼭대기에 위치시켰다는 점에서 서양 건축의 영향도 드러난다.주7
한편 관저와 대사 업무동의 지붕 조형뿐만 아니라 기와지붕을 얹은 정문에서 한옥 조형을 의식했음이 명백하다. 김중업은 스스로 관저와 대사 업무동, 두 동은 동양의 불전에서 착상했다고 밝히기도 했다.주8 관저와 대사 업무동의 지붕은 한옥 조형의 현대적 재해석이라는, 현대 건축에 한국성을 적용하는 방식을 처음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두 건물은 90년대까지 한국성 적용 사례의 전형으로 자리했으며, 그 영향은 오늘날 지어지는 건물에도 남아있다.주9
반대로 대사 업무동의 지붕이 르코르뷔지에의 영향이라는 주장도 있다. 김중업은 르코르뷔지에 사무실에서 1954년 중반부터 인도 찬디가르 소재 펀자브 주지사 관저Palais du Gouverneur의 실시 설계를 담당했다. 대사 업무동 지붕의 원형이 가장자리가 들린 이 주지사 관저의 지붕이라는 주장과 한옥 지붕이라는 주장이 공존한다.주10 하지만 주지사 관저의 지붕은 두 ‘처마’의 말단이 통째로 들린 형태라면, 대사 집무실은 네 ‘추녀’가 들린 형태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건물 위에 별도로 지붕을 올린다는 아이디어는 프랑스 대사관 이전에 이 생각을 이미 여러 차례 건물에 적용한 르코르뷔지에로부터 온 것으로 보이나, 곡률과 조형은 한국 전통 건축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설득력 있다.
프랑스 대사관은 준공 이후에 우여곡절을 겪으며 최초의 모습과 크게 달라졌다. 무엇보다 대사 업무동의 지붕이 철거되고 처음과 다른 형태로 지어지는 등 원안의 핵심 요소가 변경된 것이 아쉬움을 자아냈다. 원안의 지붕이 네 개의 기둥으로 지탱되는 것에 반해 대체된 지붕은 기둥이 12개였고, 가장자리가 올라간 것을 제외하면 김중업의 원안과 유사성이 없는 형태였다. 정확한 지붕 공사 시점과 건축가에 관한 자료가 남아있지 않지만, 프랑스에서 공부한 한국 건축가에 의해 1970년대 말에 진행되었다고 추정된다.주11
관저는 단지 내 건물 중 최초 모습이 가장 잘 보존된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내외부에 변화가 있었다. 현관, 주방, 방문객용 화장실과 대사 가족을 위한 거주 공간이 증축됨에 따라 북측의 콘크리트 계단이 철거되었고, 옥상과의 연결을 위한 나선형 철골 계단이 설치되었다. 또한 외장 창호는 단열 창호로 변경되었고, 기존의 노출콘크리트 외벽 전체에 도장 마감이 새롭게 적용되었다.
이후 직원 수가 증가함에 따라 대사관 측은 1988년 대사 업무동의 하부 필로티를 막아 사무 공간을 추가했다.주12 필로티는 르코르뷔지에 건축의 명백한 영향을 보여주면서도 2층으로 올라가는 대칭 형태의 계단이 드러나는, 대사 업무동의 핵심 부분 중 하나였다. 그뿐만 아니라 영사관도 김중업 원안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상태로 증·개축되었고, 이 과정에서 특징적인 난간과 윤명로, 김종학의 벽화가 소실되었다. 또, 관저 앞 연못, 마당의 정자와 연못이 철거되었으며, 경비원 숙소는 관저 서남측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위치에 신축되었다. 이렇게 프랑스 대사관은 김중업의 의도와는 무관한 변경으로 인해 준공 직후의 모습을 잃었다.
2015년 7월에 증·개축 현상설계 공모전이 열렸다. 설계 공모 지침 발표 후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종덕과 문화체육관광부 예술정책관은 각각 지붕과 대사 업무동을 보존해 달라는 조건을 추가했다. 이로 인해 신축 건물이 들어설 수 있는 대지 면적은 줄어들었다.
공모전 공고 당시 7백만 유로였던 시공비는 천만 유로까지 조정되며 오랜 시간 멈추고 더디게 진행되었던 공사는 2023년 4월 마무리되었다.주13 시공은 이안알앤씨가, 조경은 조경설계 서안대표 정영선이 맡았다. 그래픽 디자이너 조현이 맡은 사이니지는 장-루이관Jetée Jean-Louis 앞에 놓여 각 동의 위치를 지시한다.
증·개축을 통해 원안의 건물들은 각자 다른 운명을 맞았다. 관저는 현상설계 공모전 당시 보존 대상으로 지정되었지만 구조 진단을 통한 보수와 도장 마감 보수 등 최소한의 수선이 진행되었고, 남측의 화단 등 최초 준공 이후에 추가된 요소 중 일부가 철거되었다. 또한 관저 주변의 다양한 동선의 포장 재료가 골재 노출 콘크리트로 통일되었고, 장애인 방문객을 위한 승강기가 설치되었다.
지붕과 필로티, 실내 공간의 변화를 겪었던 대사 업무동은 김중업의 원안을 바탕으로 김중업관Pavillon Kim Chung-Up으로 복원되었다. 철거된 기존 대사 업무동의 잔해 일부는 2022년 6월과 2023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김중업건축박물관에 기증되었다. 이 때 기증된 1층 기둥 네 점, 1, 2층 바닥 마감재, 테두리보, 프리캐스트 콘크리트Precast Concrete 패널 등은 김중업건축전시관 단지 내에 설치전시설계: IDR Architects (대표 전보림, 이승환)되었다. 원안 그대로 남아있었던, 관저와 대사 업무동을 연결하는 다리 또한 그대로 보존되었다.
대사관 직원 수가 늘어남에 따라 대대적으로 개축되었던 영사관은 이번 증·개축 과정에서 철거되었다. 영사관의 위치에는 대사관의 입구 역할을 하는 건물인 장-루이관이 들어섰다. 장-루이관에 들어가 아트리움의 끝까지 직진하면 김중업관 북측에 신축된 몽클라르관Tour Monclar과 연결된다. 몽클라르관은 대사관 직원이 근무하는 10층 건물로, 최상층에 대사 집무실이 있다. 영사관 숙소와 정문은 철거되었고, 새로운 정문이 김중업 원안과는 다른 위치에 지어졌다. 그 외에 관저 남측의 연못, 영사 숙소, 마당의 정자와 연못은 복원되지 않았으며, 경비원 숙소는 지어졌던 그대로 남아있다.
이상의 건물 중 가장 눈에 띌 뿐만 아니라 이번 증·개축에서도 가장 중요한 동은 단연 김중업관이다. 기존 대사 업무동이 오늘날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이형철근이 아닌 원형철근을 사용한 철근 콘크리트Reinforced Concrete 구조였다면, 복원된 김중업관에서는 내진 성능 확보를 위해 내측의 기둥 네 개에 SRCSteel-Reinforced Concrete 구조가 적용되었다. 지붕은 철거 후 김중업 원안을 반영하여 다시 시공되었다. 필로티와 위층을 연결하는 계단의 특징적인 난간은 스탠다드에이STANDARD.a (대표 류윤하)가 복원했다. 난간의 상세 도면이 남아있지 않아, 최초 준공 사진 3장을 바탕으로 3D 모델링하여 체리 원목으로 제작했고, 데크용 오일을 도포하여 마감했다. 네 종류 이상의 서로 다른 모듈로 이루어져 있던, 자갈의 질감이 그대로 드러나는 입면의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패널과 내부 기둥을 감싸는 초록색 대리석은 공사 전 떼어져 보관, 세척되었다가 다시 설치되었다.사진4-7
모든 것이 원안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김중업관에 기존의 업무 공간 용도를 부여하지 않고, 행사를 진행하는 공간으로 사용하는 방안을 제안한 것이다. 실내 공간인 김중업관 2층과 거기서 곧바로 연결되는 장-루이관 옥상 공간은 적지 않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행사 장소로 계획되었다. 김중업관에 위치했던 대사의 업무 공간은 몽클라르관으로 옮겨졌다.
오히려 1960년대에는 실현하기 어려웠던 김중업의 의도를 오늘날 반영하기 위해 원안을 변경한 부분도 있다. 김중업이 남긴 대사 업무동 지붕 스케치에서는 ‘X’ 형상의 보뿐만 아니라 사각형을 이루는 네 개의 보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복원된 김중업관에서는 6m가 넘는 길이의 캔틸레버 처마를 효율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보 대신 포스트-텐션 콘크리트post-tensioned concrete 구조로 지붕의 구조를 해결했다. 원안을 그대로 다시 짓는 것이 아니라, 김중업의 의도를 해석하여 구조 시스템을 변경하여 적용한 것이다. 이렇게 김중업의 의도를 해석하여 변경한 부분은 또 있다. 원안의 도면에서는 김중업관 창호가 비대칭으로 그려져 있는데, 이 부분은 김중업의 의도가 아니었을 것으로 해석하여, 개축 시 대칭으로 수정 적용되었다.
더 편리한 기술과 자재가 개발되었더라도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원안의 요소는 유지했다. 지붕 하부의 거푸집 무늬가 그 예다.사진10 합판이 없던 1961년에는 선형의 목재를 거푸집으로 사용해 대사 업무동의 지붕 하부에서 가는 목재의 무늬가 그대로 드러났었다. 복원된 지붕의 하부에서도 같은 무늬를 보여주기 위해, 합판 등을 거푸집으로 사용하는 더 수월한 방식이 존재함에도 선형 목재 거푸집을 통해 콘크리트를 타설했다.
각 동이 맞은 다른 운명만큼이나 대지의 맥락도 크게 달라졌다. 단지 내에 크게 자란 나무뿐만 아니라 최초 준공 이후 지어진 고층 건물이 대지를 감싸게 된 것이다. 그 탓에 1960년 전에는 관저에서도 보였던 한강은 현재 몽클라르관 10층에서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주변에 고층 건물이 없었던 60년대에는 관사와 대사 업무동이 충정로에서도 눈에 띄었지만,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 인접 고층 건물과 비슷한 규모로 지어진 몽클라르관이 충정로에서 보았을 때 프랑스 대사관의 존재를 드러낼 뿐이다.
신축된 장-루이관과 몽클라르관은 철골 격자가 두드러지는, 짙은 회색의 정제된 직육면체 형상으로 계획되었다. 특히 구조가 노출된 상태로 남겨진 몽클라르관의 남측 입면에서 격자가 두드러진다. 설계 초기에 장-루이관과 몽클라르관 입면에는 관저와 김중업관의 노출콘크리트와 대조되는 탄화목이 적용될 예정이었지만 마감 재료와 관련된 법이 개정됨에 따라 결국 짙은 회색의 UHPCUltra-High Performance Concrete 패널이 적용되었다. 자재 시험 성적 인증 기관에 접수되는 시험 성적서 발행 요청이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공기 연장을 막기 위해서는 시험 성적서를 추가로 발급받지 않아도 되는 자재를 적용해야 했다. 이에 따라 개정·시행된 법에 부합하는 불연재로 외장재를 변경한 것이다. 이로 인해 두 건물은 관저와 김중업관과 대조되는 동시에 두 김중업 건축물의 배경을 이룬다.사진1
이상의 두 신축 건물과 두 복원된 건물의 관계는 르코르뷔지에가 설계한 벨기에 앤트워프 소재의 메종 구에뜨Maison Guiette와 그 동측에 접하여 지어진 BVBA 32 사옥의 관계와 유사하다.주4, 사진16 BVBA 32 사옥의 외부 마감은 초기에 메종 구에뜨와 동일한 백색 도장으로 계획되었지만, 메종 구에뜨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결국 짙은 회색으로 시공되었다. 장-루이관과 몽클라르관 입면의 색도 BVBA 32 사옥 입면 색의 연장선에서 볼 수 있다.
나아가 신축 건물의 축에서도 김중업의 두 건축물을 대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김중업 원안에서 영사관과 대사 업무동, 관저의 축은 모두 달랐다. 하지만 현재 장-루이관의 축은 김중업관과, 몽클라르관의 축은 관저와 일치한다. 그뿐만 아니라 장-루이관 기둥이 이루는 단위격자는 한 변의 길이가 4.5m인 정사각형으로, 김중업관과 동일하다. 이는 관저, 대사 업무동이 가졌던 맥락을 존중하는 태도로 보인다. 또 사티와 매스스터디스 공모전 제출안의 신축 건물 규모가 다른 제출안과 비교하여 작았던 것도 김중업 건축을 존중하며 부각하려는 의도였다.
같은 맥락에서 장-루이관과 몽클라르관 어디에서도 한국성을 보여주려는 시도가 드러나지는 않는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는 비교적 근래 준공된 주한 스위스 대사관이 한옥 처마와 목구조의 형태를 차용한 것과 대조된다.사진17 이렇게 사티와 매스스터디스는 한국 전통 건축의 조형을 지붕 형상으로 가져왔다고 평가되는 관저와 김중업관의 지붕의 느낌을 또 다른 한국성을 추가함으로써 상쇄시키지 않았다.
탁 트인 장-루이관의 옥상 공간은 건물 명칭의 유래이기도 한 크리스 마커Chris Marker의 1962년 작 ‘방파제La Jetée’ 마지막 장면의 공간을 연상시키는, 증·개축된 프랑스 대사관의 특징적인 공간 중 하나다.사진9 연회 등의 행사를 열 수 있는 이곳은 마찬가지의 용도로 사용될 예정인 김중업관 내부와 이어질 뿐만 아니라 몽클라르관과도 자연스러운 동선을 형성한다. 장-루이관이 있던 자리에 위치했던 영사관도 같은 높이의 건물이었지만, 영사관의 옥상이 대사 업무동 내부와 연결되지 않았던 것과 상반된다. BVBA 32 사옥은 메종 구에뜨와 2층의 작은 개구부를 통해 연결된다. 이 개구부가 르코르뷔지에의 원형에서 달라진 유일한 부분이다. 장-루이관 내부와 김중업관의 필로티를 연결하는 동선, 그리고 장루이관의 옥상과 김중업관의 2층을 연결하는 새로운 동선은 메종 구에뜨와 BVBA 32 사옥의 이 새로운 연결 동선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장루이관 옥상 바닥에도 장-루이관과 몽클라르관 입면의 짙은 회색 격자가 적용되었다. 하지만 입면과는 달리 옥상 바닥에 드러난 격자는 콘크리트 위에 덧붙여진 것으로 실제 구조가 아니다. 이 격자는 두 신축 동의 구조 시스템을 부각한다. 한편 옥상에 드러나는 어두운 색상의 격자형 구조 시스템은 비슷한 공간과 노출된 구조를 보이는 초루, 오설록 티뮤지엄 내 티테라스 등 매스스터디스의 근작과 연동된다.사진18
두 신축동 외에도 크게 변화한 부분은 정문이다.사진8 김중업 원안에서는 정문에서 대사 업무동을 정면으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공모전 제출안에서는 기존 정문을 철거하고 가로로 긴 조형의 정문으로 신축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결국 정문은 원안과 비교하여 동측으로 옮겨져, 정문에서 김중업관이 아닌 장-루이관의 입구가 정면으로 보이게 되었다. 1960년대에 프랑스 대사관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안병의는 착공 후 현장에서 많은 부분이 결정되었다고 밝혔다. 이는 단지 내 여러 지점에서 보이는 서로 다른 동들의 조화가 김중업 원안에서 중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중업의 중요한 설계 의도 중 하나가 단지 내 각 지점에서 건물군이 이루는 조화임을 상기할 때, 정문 위치의 변화는 대사관 진입 시의 첫 장면의 변화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중대한 결정이었다.
1. 김중업, <건축과 환경> , 81호, 1991년 5월, 117쪽.
2. 착공 시기는 <건축과환경> 81호 117쪽에서는 1960년 봄으로, 정인하의 <시적 울림의 세계> 81쪽에서는 1960년 가을로 명시되어 있다. 같은 책·같은 곳., 정인하, <시적 울림의 세계> (서울: 시공문화사, 2003), 81쪽.
3. 김중업, 같은 책, 117쪽.
4. 박용숙, ‘한국현대건축의 미학’, <건축사>, 1974년 10월, 9-14쪽.
5. 김광현, ‘주한 프랑스 대사관 : 근대의 갈등을 잃은 한국현대건축의 기점’, <SPACE> 302호, 1992년 11월, 80쪽.
6. “첫째, 서구조형 정신을 거친 눈으로 동양을 새로운 각도에서 재검토함으로써 동양 조형정신의 현대화를 꾀한다는 것으로서 이루어지는 작품이 현대건축의 궤도 위에 새로운 위치를 차지하리라는 기대 위에 작품창조에의 의욕은 비행기 속에서 호텔에서 여러 구상으로 비약했었다.” 김중업, ‘올 해 못한 일’, <조선일보>, 1956년 12월 27일 자.
7. 이필훈, ‘분석되어져야 할 신화’, <건축과 환경> 81호, 1991년 5월, 128쪽.
8. 안창모, ‘[2022 김중업 온라인 건축강좌 X 학술콜로키움] 안창모 – 김중업의 전통건축 인식과 김중업 건축의 전통계승 고찰’, https://www.youtube.com/watch?v=Xxk1fm1kErA&ab_channel=%EC%95%88%EC%96%91%EB%AC%B8%ED%99%94%EC%98%88%EC%88%A0%EC%9E%AC%EB%8B%A8.
9. 이필훈, 같은 책, 128쪽, 이희준, ‘가짜의 성공’, <건축평단> 19호(2019).
10. 정인하, 같은 책, 92쪽.
11. 노형석, ‘박정희가 추방한 김중업 ‘프 대사관’엔 드골·조윤선·김건희 이름이’, <한겨례>, 2023년 5월 23일 자, https://m.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092854.html#cb.
12. 조현정, ‘[Re-Visit SPACE] 김중업의 주한 프랑스대사관, 그 원형에 대한 강박’, <SPACE> 649호, 2021년 12월, 124쪽.
13. “Ambassade de France en Corée,” https://sathy.fr/projets/ambassade-france-en-coree.
14. BVBA 32는 과거 앤 드묄르미스터Ann Demeulemeester, 하이더 아커만Haider Ackermann 등 패션 하우스를 소유했던 기업이다. 주소는 Populierenlaan 34, 2020 Antwerpen, Belgium. 조민석, ‘르 코르뷔지에의 메종 구에뜨 일화로 보는 수명 연장’, <건축신문>, 2021년 3월 21일 자, http://architecture-newspaper.com/v25-c09-masion/.